젊은 의사들, 한국 '엑소더스'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의사들의 한국 '엑소더스'가 큰 물결을 이룰 조짐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2000년 의약분업 이후 한국에서 의사생활을 포기하는 인력이 조금씩 생겨나다가 최근 일반 의사뿐 아니라 의과 대학생들까지 미국, 영국 등 해외 의사고시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추세로 나타났다.

실제로 '미국 의사고시'(USLME)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의사고시 준비모임'(www.uslme.com)의 회원 수는 지난 2001년 4월 개설 초기 1천500여명에서 올해 7월 현재 3천869명으로 2년 조금 지난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또 작년 2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미국 의사고시 준비모임'(cafe.daum.net/usstep1)도 회원수 728명을 자랑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의사고시 열풍은 초기만 해도 의약분업 이후 해외로 눈을 돌리는 '생계형'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대학생, 군의관 등 20∼30대 예비의사들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의대에 재학중인 김모(24)씨는 "동기중 절반 이상이 미국 의사고시에 매달리고 있다"며 "1∼2차 의사고시 시험통과를 유학 조건으로 내세우는 미국 대학이 많기 때문에 겸사겸사해서 다들 시험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치과의사 추모(27)씨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낼 수 있는 젊은 의사들은 대부분 미국 의사고시를 준비중이고 합격한 사람도 주변에 많다"며 "미국 의사고시 자격증을 취득하면 경력에 도움이 되고 2세까지 생각하면 미국에서 생활기반을 잡는 데도 유리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의사고시가 한국인 의사들에게 완벽한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데다 젊은 의사들의 해외진출로 국내에 의료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전역을 앞둔 군의관 김모(30)씨는 "미국 의사고시 1∼2차 시험까지 봤지만 최종 합격한다 하더라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한국인 출신 의사 대부분은 백인들을 상대로 치료하는 게 아니라 미국내 한인타운에서 개업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종합병원에서 근무중인 박모(32)씨는 "해외 의사고시의 경우 언어장벽이 높을 뿐더러 실제로 취업하더라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며 "국내에서 양성된 의료진이 국내 의료를 담당하지 않고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손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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