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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가는 노인 “죽으러 가는 기분, 돌아오는 이 없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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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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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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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은 요양병원에 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죽으러 가는 기분이야. 동네사람들 요양병원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 아무도 없어.”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코로나 사망 압도적 1위 요양병원 #어쩌다 ‘코로나 공장’ 오명까지 #20인실·공동간병 싼 값에 방치 #집단감염 폭발은 예고된 결과 #투자 늘려야 현대판 고려장 면해

10월 중순 KBS 뉴스의 요양병원 고발 리포트의 한 장면이다. 80세 전후로 보이는 남자 노인은 휠체어에 앉은 채 승합차 뒤쪽으로 승차한다. 쉰 듯한 목소리,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앞날을 예측하는 듯하다. 그의 말대로 요즘 요양병원이 ‘현대판 고려장’처럼 비치고 있다.

요양병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잇따르면서 사망자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봄 대구·경북에서 코로나가 유행할 때 동일집단 격리(코호트) 기법으로 비교적 선방했다. 코호트 격리는 유능한 지휘자가 확진자·비확진자의 공간·동선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중증으로 번지면 즉시 큰 병원으로 옮기고, 경증이나 비확진자는 연수원 같은 데로 옮기는 등의 지휘를 해야 한다. 지금은 이게 무너졌다. 감염 막는 수단인 코호트 격리가 ‘감염 공장’이 됐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울산 남구 양지요양병원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 지금까지 243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뉴스1]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울산 남구 양지요양병원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 지금까지 243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뉴스1]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에서 지금까지 41명 숨졌다. 얼마나 더 숨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 분석에 따르면 28일 0시 기준 코로나19 사망자는 819명이다. 이 중 추정 감염경로가 요양병원인 사람이 197명(24.1%)에 달한다. 다른 경로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기저질환이란 말이 일상용어가 됐다. 요양병원 환자 사망자나 확진자의 거의 100%가 기저질환자이다. 그렇다고 지병이 있다고 해서 속절없이 죽을 이유는 없다.

코로나 사망자 추정 감염경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 사망자 추정 감염경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를 계기로 요양병원의 문제가 폭발했다. 경기도 고양시 미소아침요양병원의 한 간병인은 “3층 중환자실에 남자 10명, 여자 10명이 있는데, 산소장비 같은 걸로 나눠져 있다”며 “간병인 4명이 20명을 돌봤고 모두 감염됐다”고 말했다. 10인실 두 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20인실에 가깝다. 그는 확진돼 설사를 하고 토했다. 그런데도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기저귀를 차고 일하다 11일 만에 전담병원으로 이송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요양병원의 병실당 평균 병상은 8~10개이다. 11인실 이상이 9.4%, 7인실 이상이 48%이다. 다인실의 원인은 간병비에 있다. 8~10인실에 1명의 간병인이 숙식하며 돌본다.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은 “7만명가량의 간병인 중 4만명이 중국동포이어서 케어의 질이 낮다”고 말한다. 대개 월 300만원의 간병료를 환자가 나눠 부담한다. 8인실이면 한 환자가 약 38만원을 낸다. 간병비에 건강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개호보험이 커버하고 1인실 위주로 돼 있다.

요양병원 코로나 주요 집단감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요양병원 코로나 주요 집단감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순천향대학 부천병원 감염내과 김탁 교수는 지난 6월 ‘감염과 화학요법’ 학술지에 요양병원의 코로나19 대응 논문을 발표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한 요양병원이 6~10인실이고, 침상 간격이 1m도 안 됐다고 한다. 김 교수는 ▶병실마다 환자가 많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감염되기 좋고 ▶격리 공간이 충분하지 않으며 ▶감염 우려 때문에 전원이 용이하지 않고 ▶직원의 감염병 지식이 부족한 점을 요양병원 감염의 제도적 이유로 들었다. 격리실이 있는 요양병원이 58.5%, 음압병실이 있는 데가 0.5%에 불과하다. 요양병원의 상당수가 상가·복합건물의 일부 층에 들어있다. 공기 공조시설이 없고 창문을 여는 게 유일한 환기법이다.

손덕현 회장은 “요양병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밑바닥 그대로다. 누구도 관심 없다”고 말한다. 가령 일반병원은 3, 4, 5인실을 늘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이런 병실 수가를 높게 책정했지만 요양병원은 그런 게 없다. 1~5인실 쓰면 보험이 안 돼 환자 부담이 커진다. 감염전문 인력(지휘자)이 있어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가가 없다. 이번에 임시로 생겼다. 기본 진료비도 입원료나 진료비 등을 하나로 합쳐 하루에 정액(의료 중도 기준 4만6020원)으로 받는다. 병원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고 한다.

요양병원 매년 증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요양병원 매년 증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가족이나 환자도 요양병원에서 더 부담할 의향이 그리 많지 않다. 간병비도 골치다. 8인실을 4인실, 2인실로 줄이면 병실은 쾌적해지고 감염 우려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입원료 부담이 늘고 간병비는 두 배, 세 배가 된다. 아니면 일본처럼 간병비에 건보나 장기요양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그리하려면 보험료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내야 한다. 싼 게 비지떡인데도 선진국 수준을 기대하는 불편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

김탁 교수는 “그동안 요양병원에 투자를 제대로 안 했다. 건보료나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국민 합의가 없었다. 앞으로 이번 사태가 반복적으로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선진국처럼 2인실로 가야 하는데, 천문학적 부담이 생긴다. 그런데 정부는 병원마다 일정 비율의 다인실을 갖추라고 강요하고 국민의료비 절감을 목표로 내세운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지금의 요양병원은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차제에 5년, 10년 계획을 세워서 병상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내년 가을까지 버티려면 지금이라도 해당 지역의 대학병원이 요양병원의 감염관리 교육을 해야 한다. 검사 확대만 외칠 게 아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