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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정복자와 피정복자 혈통이 어울려 사는 아마존 마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30) 

성남시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어려운 형편에서도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에서 일곱 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는 김정하 목사. 그는 기도해왔다. 아이마다 법관이 되고, 의사가 되고, 여성 인권가가 되고, 장군이 되고... 그중 콜롬비아의 샤리끄는 “미스 콜롬비아가 되었으면” 기도했다. 직접 만나 보니, 정말 그렇게 기도할 만했다. [사진 허호]

성남시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어려운 형편에서도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에서 일곱 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는 김정하 목사. 그는 기도해왔다. 아이마다 법관이 되고, 의사가 되고, 여성 인권가가 되고, 장군이 되고... 그중 콜롬비아의 샤리끄는 “미스 콜롬비아가 되었으면” 기도했다. 직접 만나 보니, 정말 그렇게 기도할 만했다. [사진 허호]

컴패션에서 후원하다 보면 매월 내는 후원금 외에 일 년에 한 번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선물금을 내겠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생각하게 됩니다. 이게 선택사항이면, 어떤 아이는 선물을 받고 어떤 아이는 선물을 못 받게 되지 싶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센터에 다 같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데, 아이들끼리 비교가 될 것 아닙니까. 컴패션에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컴패션에 등록된 아이들은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물을 받게 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택하지 않은 후원자의 후원 아이도 공평하게 선물을 받습니다. 결연후원은 하지 않아도 크리스마스 선물만 따로 후원하는 사람도 있다지요.

콜롬비아의 샤리끄 어린이.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선물을 받고 정말 활짝 웃었다.

콜롬비아의 샤리끄 어린이.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선물을 받고 정말 활짝 웃었다.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었습니다. 컴패션에서 후원자와 어린이를 만나면,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요. 특히 후원 어린이를 만나면 정말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봤습니다.

성탄절 기간이라 그럴까요? 아무 조건도, 대가도 필요 없이 선물과 같은 호의를 받을 때,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받을 때, 그래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믿게 될 때 어린이는 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긍정적이 되죠. 어린아이다워지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후원자인 김정하 목사가 전해주는 선물을 받은 콜롬비아의 샤리끄 어린아이의 환한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요.

조건 없는 사랑에 해외 후원 어린이만 드라마틱한 변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 10여년 넘게 후원해서 컴패션에서 페루 어린이를 졸업시킨 후원자가 있다고 해서 만난 김명근 후원자. 미국의 헬렌 할머니로부터 후원 받으며 그는 가난을 이겨내고 꿈을 찾을 수 있었다.

조건 없는 사랑에 해외 후원 어린이만 드라마틱한 변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 10여년 넘게 후원해서 컴패션에서 페루 어린이를 졸업시킨 후원자가 있다고 해서 만난 김명근 후원자. 미국의 헬렌 할머니로부터 후원 받으며 그는 가난을 이겨내고 꿈을 찾을 수 있었다.

2009년부터 10년 넘게 한 어린이를 후원해 졸업시킨 김명근 후원자라는 분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그는 농협에서 그 지역 농기구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저와는 동갑내기라 짧게 단 문답으로 답하는 그를 보며 왠지 모를 동질감을 깊게 느껴 굉장히 반가웠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70년대에 컴패션에서 후원받은 적이 있던 컴패션 후원자였습니다.

지금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돕고 있는 컴패션은 1993년 전까지 한국에서 한국 어린이를 양육하며 돕는 단체였습니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김명근 후원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떤 선물이 올까 기대하곤 했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선물 크기를 보며 정말 그랬다고 합니다. 지금 크리스마스 선물금이 공평하게 나뉘어서 간다는 것에 손뼉을 쳐주더라고요.

아마존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만나 후원까지 하게 된 아나 어린이(오른쪽)과 동네 언니.

아마존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만나 후원까지 하게 된 아나 어린이(오른쪽)과 동네 언니.

에콰도르의 아마존 상류 인근 밀림에 촬영을 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차로 갈 수 있는 최대한까지 깊이 들어가 다시 몇 시간을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갔지요. 딱 보니 우리와 같은 계통의 생김새더라고요. 거기에서 만난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순박했고 순수했어요. 꼬맹이 몇 명이 놀고 있길래 너무 귀여워서 물어보니 아직 후원자를 못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죠. 아이는 내가 후원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정말 저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웃는 게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아이뿐 아니라, 아이 부모, 할머니까지도 저에게 마음을 열며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습니다. 새 깃털로 만든 까만 부채였는데, 가볍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아주 이국적인 선물이면서도 생활에 유용했습니다. 흔히 살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아나의 아빠가 직접 만든 지구 위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이 귀한 선물도 시간이 지나니 깃털이 빠지고 낡아지긴 하더군요.

후원할 아이를 만날 줄 몰랐던 저는 마침 한국에서부터 사진 소품으로 들고 간 크리스마스용품이 있길래 선물로 주고 사진을 찍었죠. 같이 놀아준 동네 예쁜 언니가 함께 찍혔습니다. 아나는 원주민 쪽 혈통인 듯했고, 동네 언니는 서양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티가 났습니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두 사람이 사이좋게 한 사진에 찍힌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지역을 빼앗기 위해 무기를 들었지만, 후대 밀림 속에 사는 이들을 돕기 위해 순교했던 미국인 짐 엘리엇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미국인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람들은 지금도 원주민을 위해 무료로 경비행기를 몰며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대가 없이 보내진 선물처럼요.

후원자가 직접 들고 간 선물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태국 어린이. 보통은, 선물금을 통해 현지에서 어린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직접 골라 산다. 이런 방법으로 세관이나 배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고, 빈민가나 오지로 배송할 때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후원자가 직접 들고 간 선물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태국 어린이. 보통은, 선물금을 통해 현지에서 어린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직접 골라 산다. 이런 방법으로 세관이나 배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고, 빈민가나 오지로 배송할 때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아마존 밀림 속에서 이제는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을 아나가 어떤 선물을 골랐을까 궁금해서 사진을 펼치다가, 김정하 목사로부터 선물 받은 샤리끄 생각까지 하게 되었네요. 이들 역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을 것인데, 그 변화가 특별히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다른 이도 사랑할 줄 아는 것,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에게 이처럼 놀랍고 기적과 같은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성탄을 맞아 예수를 생각하면 나 역시 컴패션 어린이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먼저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겸손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성탄입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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