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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윤석열이 이번 복귀 때 말한 ‘상식’…권력 주체, 특권층 아닌 국민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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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왜 ‘상식’을 택했을까. 지난 24일 법원의 업무 복귀 결정 직후 그의 일성은 헌법과 법치, 상식이었다. 헌법·법치는 늘 하던 말인데, 상식은 새로 추가됐다. 3선인 장제원(국민의힘) 의원은 27일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끌어낸 사건인데 메시지를 허투루 내놓을 리 없다”며 “단어 하나하나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헌법·법치 이어 ‘상식’ 새롭게 언급 #측근, 토머스 페인의 『상식』 지목 #야당 “여권, 법 앞에 평등 상식 깨”

토머스 페인

토머스 페인

실제로 윤 총장의 측근인 한 검찰 간부는 “너무 당연한 가치들이 무너지고 있다”며 “이제는 민주주의의 상식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독립혁명 사상가인 토머스 페인의 저서 『상식(Common Sense)』을 지목했다.

이 책은 1776년 출간 3개월 만에 10만 권이 넘게 팔리며 독립선언문의 기초가 됐다. 페인은 특권(왕·귀족)이 지배하는 전제정치와 식민지배가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난다며 독립운동을 역설했다.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민주공화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상식』은 대의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페인과 윤 총장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권력의 주체가 특권층이 아닌 국민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 8월 여당에서 그를 공격하는 빌미가 됐던 ‘법의 지배(rule of law)’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사회계약론자 존 로크에 따르면 개인이 국가에 양도한 권력은 오직 국민이 합의한 ‘법의 지배’에 따라서만 행사돼야 한다(『통치론』).

반면에 수단적 성격이 강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권력자가 임의로 법을 해석·집행하거나 시민을 통제할 때 쓰인다. 그러므로 진정한 국민주권은 ‘법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치주의는 시민이 법을 잘 지키라는 준법과 달리 ‘통치자가 오직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윤 총장과 여권의 갈등이 시작된 곳도 정확히 이 지점이다. 지난해 조국 사건에 이어 월성 원전 폐기,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수사가 모두 ‘살아있는 권력’을 향했기 때문이다. 장제원 의원은 “법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는 상식과 달리 청와대·여당은 특권을 누리려 했고, 그 결과 법치주의자 윤석열을 내쫓기로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총장의 철학은 과거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의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말은 검찰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권력은 늘 호시탐탐 법치를 무너뜨리고 제멋대로 하려고 하지만, 이런 폭주를 막기 위해 입법·행정·사법권을 나누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서로를 감시토록 했다(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특히 한국은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 청와대를 견제하는 사법의 독립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권에선 윤 총장의 복귀 직후 그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과 해당 판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야스차 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민주주의 위기 현상의 대표적 징후 중 하나로 선출 권력의 횡포를 꼽는다. 이들은 종종 “국민의 뜻을 만능”으로 내세우며 “독립 기구들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야당에 재갈을 물리려 하기” 때문이다(『위험한 민주주의』). 그러면서 “짝패들과 함께 법원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만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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