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기-승-전-임명강행 청문회

중앙일보

입력 2020.12.2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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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청문회는 때때로 스타를 탄생시킨다. 대부분 비리를 캐내는 청문 위원이 스타가 되지만, 죄인처럼 불려 나온 인물 가운데 나오기도 한다. 1987년 미 의회의 이란-콘트라 스캔들 청문회에 섰던 올리버 노스(77)가 대표적이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미국이 테러국으로 지정했던 이란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팔고 그 이익금으로 니카라과 반정부군을 지원한 사건이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1911~2004)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의회는 의혹을 입증할 핵심 인물로 국가안보회의(NSC) 소속 노스 중령을 청문회에 불렀다. 미남형의 노스는 말쑥한 군복 차림으로 청문회에 나와 단호한 태도로 정부 정책과 자신을 방어했다. 대중은 그에게 환호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그를 ‘수퍼스타’로 표현했다. 노스는 이후 실패는 했지만, 상원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2018년엔 미국의 대표적 이익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 회장이 됐다.

인사권자 들러리 행사된 청문회
여야는 도덕성 검증 비공개 추진
철저한 사전 검증 시스템 필요

국내 청문회 최고의 스타는 단연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1988년 11월 열린 5공 청문회는 초선의 노무현을 단번에 전국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노무현 의원은 송곳 질문으로 안기부장 출신의 5공 실세 장세동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 당대의 재벌 총수들도 그의 추궁에 쩔쩔맸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권덕철 보건복지부, 변창흠 국토교통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대상이다. 야당은 벼르고 있다. 공격은 변창흠 후보자에 집중돼 있다. 애초 변 후보자 청문회는 정책청문회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구의역 사망 김군 관련 망언, 서민 비하성 발언 등으로 도덕성 검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야당은 사퇴를 말한다. 하지만 청문회가 끝나면 청문 보고서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문재인 대통령은 네 명 모두 임명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처럼 기-승-전 임명 강행이다. 그러니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나온다. 후보자는 청문회를 적당히 버티면 된다. 그래도 성의는 보여야 한다. 변 후보자는 청문회 하루 전날 산재 가족 농성장을 찾아 그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김군 유가족에 사과하려 했으나 어렵게 되자 ‘우회 기습사과’ 한 거다.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서소문 포럼 12/24

서소문 포럼 12/24

여야는 지금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능력 검증만 공개하는 인사청문회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그리 싸우던 여야는 이 문제에선 지난달 바로 의견 일치를 봤다. 인사청문회가 인신공격·신상털기식이라 능력 있는 사람을 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란다.

청문회 이원화는 제대로만 된다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청문회 수준과 여건을 볼 때 사실상 청문회를 후퇴시키는 거다. 그나마 어느 정도 기능하던 후보자 검증이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인사청문회를 통해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 표절을 밝혀냈다. 도덕성 검증 비공개는 끼리끼리 감싸주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미국은 대통령이 고위공직자 인준 동의안을 상원에 보내기 전에 백악관이 검증 과정을 총괄한다. 상원 인준 대상 자리는 1000개가 넘는다.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정부윤리실(OGE)이 실시한 조사가 모두 포함된다. 우리도 청와대에서 경찰·국세청·금융감독원의 전문 인력이 후보자 검증을 하지만, 미국에 비할 바 못 된다. 청와대에서 나름 촘촘히 했을 검증을 통과해도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이 매번 터져 나온다.

도덕성·정책 능력 검증의 이원화를 말하기 전에 더 세밀하고 강화된 사전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람이 먼저’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배치되는 발언을 한 변창흠 후보자를 보면 현재의 검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자료 제출도 부실하고, 청문회서 거짓 진술을 해도 제대로 처벌하기 어렵다. 후보자의 허위진술, 자료 제출거부를 방지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사청문 대상도 더 늘려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선거 때 고생했다는 사람들이 주요 공공기관, 공기업 대표로 나가는 게 다반사다. 새로 정권 잡은 사람에겐 전리품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라 운영에 하나하나 중요한 자리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초 공공기관 인사에 부적격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자치단체 관할 공기관·공기업 대표에 대한 인사청문은 일부 지자체에서 이미 하는 거다. 또 이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가 인사권자의 들러리 행사가 됐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번 청문회를 통해 한 번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다.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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