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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철길로 막은 ‘독립운동 성지’ 임청각 복원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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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경북 안동시 법흥동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앞으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에서는 석주 선생을 비롯해 모두 11명의 독립운동가가 나왔다. [뉴스1]

경북 안동시 법흥동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앞으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에서는 석주 선생을 비롯해 모두 11명의 독립운동가가 나왔다. [뉴스1]

일제가 철길을 놓아 반토막이 난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 복원이 본격화됐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 집안이 대대로 살던 임청각에서는 11명의 독립운동가가 나와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유공자 11명 나온 고성 이씨 고택 #1942년 중앙선 들어서며 반토막 #복선 전철화 완료되며 철로 철거 #충북 단양~경북 안동 구간도 줄어

임청각 복원의 발단은 2017년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청각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 등 아홉 분(이후 2명 추가로 추서)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라며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99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일제에 의해 반토막 난 모습이 아직 그대로”라며 “이상룡 선생의 손자·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 발언 이후 문화재청과 경북도, 안동시는 임청각 복원 사업에 속도를 붙였다.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은 본래 99칸 대저택이었지만 집 한가운데 철길이 들어서는 탓에 50여 칸이 허물어졌다. 남은 칸도 진동과 소음으로 크게 훼손됐다. 일제가 1942년 2월 나쁜 조선인이라는 뜻의 ‘불령선인(不逞鮮人·불량한 조선인)’이 사는 집이라며 일부러 노선을 우회시켜 철길을 놓으면서다.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철로는 서울 청량리역과 경북 경주역을 잇는 중앙선이다. 철길이 나기 전 임청각 입구 쪽에는 행랑채와 마굿간 등이 있었다.

임청각이 지어진 것은 1519년이다. 형조좌랑을 지냈던 고성 이씨 이명(李洺)이 지었다. 임청각 주변은 영남산을 등지고 낙동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이곳에서 독립유공자가 11명 나왔다. 이 선생의 동생 상동(1865~1951·애족장)·봉희(1868~1937·독립장), 아들 준형(1875~1942·애국장), 조카 형국(1883~1931·애족장)·운형(1892~1972·애족장)·광민(1895~1945·독립장), 손자 병화(1906~52·독립장), 손자며느리 허은(1907~97·애족장), 당숙 이승화(1876~1937·애족장), 부인 김우락(1854~1933·애족장) 여사다.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임청각은 본격적인 복원 사업에 들어간다. 기존 철로가 철거됨에 따라 지난 16일 오후 7시36분 석주 선생의 종손이 탑승한 마지막 무궁화호 제1681 열차가 임청각 앞을 지나가는 것을 끝으로 열차 운행도 종료됐다. 17일 정오에는 임청각의 독립운동 역사를 되새기는 행사와 함께 임청각 사당에서 고유문을 낭독하고 임청각 앞 방음벽을 철거하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현재 안동역도 90년 만에 문을 닫고 ‘KTX 이음’이 지나는 새 안동역으로 문을 열었다. 문화재청과 경북도, 안동시는 2025년까지 280억원을 들여 임청각은 물론 주변에 있던 석주 집안 후손들의 가옥까지 복구할 예정이다.

임청각 앞 철길이 사라지고 복선전철화 사업이 마무리되면 현재 중앙선 충북 단양~경북 안동 구간은 86.7㎞로, 직선화 공사가 끝나면 72.3㎞로 14.4㎞ 짧아진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임청각이 철도 이설과 복원사업을 계기로 애국애족의 상징적 공간으로 거듭남으로써 국난극복의 국민적 의지를 모으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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