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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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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잘못된 행동을 그치라며 아이들에게 무심코 하는 말이 “지지”다. 놀랍게도 한자 “지지(知止)”와 음이 똑같다. 불교 신도들에게서 통용되는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분수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이다. 보편적인 도덕의 경계는 넘지 말라는 말일 수도 있겠다. 고된 엄마들 입에 따라다니는 “지지”가 심오한 불법(佛法)에서 유래된 의성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 하고 싶은 말은 “지지”일 듯싶다. 팬데믹과 온난화의 업보를 낳은 자연에의 숱한 가학(加虐)을 멈추자는 성찰도 그렇겠다. 좀 더 가까운 대상은 부도덕과 욕심으로 빚어진 우리 인간 세상 스스로의 분란이다.

‘부동산·검찰’ 거듭되는 난장판 #멈춤 없는 권력에 국민은 지쳐가 #자기 이익, 자찬에 집착 그치고 #비우고 다시 채워 새출발 하길

울적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고 삶의 신바람과 희망을 되살려 줘야 할 역할은 의당 정치 권력의 몫. 그러나 권력이 안겨 주어 온 우울함은 성탄과 세모(歲暮)에도 그침이 없다. 변명거리조차 없는 건 부동산이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세금 올리고 단속하고, 광풍 같은 24차례 정책의 결과는 전세 대란과 아파트값 폭등, 그리고 말없는 다수의 좌절과 분노다.

우리 모두는 희로애락의 삶을 헤쳐 온 조상들 지혜의 뭉터기인 역사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가는 왜소한 존재일 뿐이다. 소수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다. 공급과 수요라는 시장경제의 보편 원칙을 외면하고, 늘 이윤 좇게 마련인 자본과 소시민의 본능을 도외시한 진압 작전은 도대체 뭘 남겼나. “서민 괴롭히는 집값만은 잡겠다”는 선의로 배를 출항시켰다 치자. 이쯤 표류했으면 망망대해에서라도 멈춰설 일이다. 해와 달, 별과 바람 다시 살펴 항로와 고장난 배를 고쳐가는 게 순리일 터다. 변창흠? 지대 불로소득에 대한 증오로 충만한 현대판 ‘헨리 조지’들로 조종 키를 쥔 이들만 바꿀 뿐이다. 추진력? 균형감이 없다면 배는 제자리를 맴돌다 주저앉고 만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자코뱅 강경 정권의 과격한 정책으로 빵값 폭등과 토지의 무상 몰수, 유상 분배 등의 후유증이 극심해졌다. 애초엔 진보주의적이었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 이랬다. “손가락이 동상에 걸렸다고 자기 집에 불 지르는 사람은 결코 집에 온기를 제공할 수 없다.”

난장판이 돼버린 검찰 개혁의 정의는 원래 단순했다. ‘검찰의 성역 없는 공정한 수사’일 뿐이다. 검찰 권력의 오랜 부조리에 대한 개혁의 공감대도 충분했다. 그러나 온 나라를 블랙홀로 빨아들인 이 혼돈의 결과물은 둘뿐이다. 대통령이 장(長)과 검사 25명을 임명하는 옥상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탄생과 뒤이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이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자는 데 시비 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무소불위의 공수처는 이제 누가 견제하나. 다음은 다시 공수처 개혁인가. 이 모든 고리를 꿰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그림은 이렇다. ‘윤석열의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 재판부 기각 기대 → 추미애 사퇴로 윤의 동반 퇴진 압박 → 1월 하순 공수처 출범 → 검찰의 주요 권력 관련 사건 공수처 이첩 → 권력의 레임덕 최소화’.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사건 의혹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이런 수순 만은 아니길 믿고 싶다. 이런 정치공학을 어떻게 제도적 검찰 개혁이라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합리적 의심을 더욱 거둘 수 없는 건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의 제물로 돌변해 온 과정 때문이다. 완벽한 검찰 개혁의 도구라 정치권력이 칭송하던 윤석열 총장이 제단의 예물로 이끌려 온 것은 그의 칼날이 권력을 겨누면서였다. ‘흠 없는 검찰 개혁의 제사장’이 구약의 얘기대로 ‘흠 없는 수컷’이란 번제(燔祭)의 예물로 희생되는 극적 반전에 국민의 혼란과 의심이야 상식적이다. 다시 에드먼드 버크의 일갈. “무혈의 개혁은 혁명가의 입맛엔 시시하고 맥빠지는 것이다. 장면의 대반전, 장엄한 무대 효과, 상상력을 깨울 엄청난 볼거리를 필요로 한다.” 정치권력은 멈춰 서 검찰의 뼈저린 자성과 스스로의 진정한 개혁을 한번 더 검찰과 국민에게 설득했어야 옳았다.

사람들은 지쳐 간다. 그들의 잘못이란 투덜투덜대면서도 정부와 한배에 타 있는 죄뿐이다. 3년7개월 이어진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비핵화의 파국으로 멈춰 선 대북 정책, 한·미·일 동맹의 동요…. 그나마 코로나 방역으로 유지하던 정권의 권위는 불투명·불확실한 백신 확보의 불안감 앞에서 큰 암초를 맞고 있다.

멈추는 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바탕이다. 멈춤을 중시하는 불교에서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아는 지지(止持)와 그 다음 무엇을 꼭 해야하는지를 아는 작지(作持)를 늘 얘기해 준다.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마땅히 대중(大衆)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되채워야 정진(精進)이 가능하다고 한다. 무지나 게으름으로 지은 죄는 차라리 가볍되 자신의 이익과 스스로 찬양(自讚)받기 위한 오만의 죄가 가장 크다는 게 그 가르침이다.

만일 이 권력의 가시지 않는 번뇌가 장기집권의 욕심, 자기 진영과 정파만의 이익을 향한 것이라면…. 이제 한번 깨끗이 비워 달라. 무엇이 모두를 위한 것인지 성찰하고 다시 정진해 달라. “지지”다.

최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