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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어느 스무살의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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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올해 갓 스무살이 된 A는 어떤 1년을 보냈을까. 2020년의 끝자락, 재택근무를 하다 문득 2001년에 태어난 그 아이 생각이 났다. 2013년 제대한 뒤 첫 과외 학생으로 만난 초등학교 6학년생 A도 어느덧 성인이다.

학업이란 본분에서 벗어나 가장 큰 자유를 만끽할 시기에 코로나라는 속박에 갇힌 A는 평소 꿈꿔왔던 3월의 MT, 5월의 축제, 9월의 피크닉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5인 이상 모이는 일도 부담스러운 탓에 3:3 미팅을 하기도 쉽지 않았겠지.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가 A를 처음 보곤 마스크 뒤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웠을 테다. 중간·기말고사 벼락치기를 한다며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다 결국 맥줏집으로 새고 마는 일탈도 A에겐 옛 얘기였겠다. 오후 9시 이후엔 포장·배달만 가능하니, 친구의 자취방에서 유럽 어느 나라의 무관중 축구 경기 중계를 보며 캔맥주를 나눠 마시는 게 일탈의 전부였을지 모른다.

코로나19는 20대 청년들의 청춘과 일자리를 모두 앗아갔다. [연합뉴스]

코로나19는 20대 청년들의 청춘과 일자리를 모두 앗아갔다. [연합뉴스]

얼마 전 운전을 하다 신호에 걸려 정차했을 때도 A 생각이 났다. 부모에게 매번 손 내밀기가 눈치 보였을 A는 등록금 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을 거다. 코로나가 몰고 온 경기 한파에 식당·카페·PC방 등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접었고, 경영이 악화한 중·소상공인들도 직원 채용을 하지 않거나 줄였기 때문이다. 실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11월 26일~12월 2일 대학생 6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겨울 알바 구직 체감률’ 조사에서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응답이 97.2%에 달했다. 서울에 사는 A가 고려했음 직한 정원 300명의 서울시 대학생 아르바이트 프로그램엔 1만4564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48.5 대 1이었다. 거의 유일한 호황인 배달시장의 구인 공고가 눈에 띄었다면…. 차도·인도 할 것 없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저 ‘도로의 무법자’ 중 한 명에게서 A의 얼굴이 스쳤다.

청년이 겪는 고통이 더는 특이한 사회현상이 아닌 시대,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여서 A는 마스크 안에서 그 말을 삼킬지도 모르겠다. ‘과사(학과 사무실)’에 쌓인 대기업 이력서를 골라 취업할 수 있었다는 기성세대는 위로하는 척만 할 뿐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나 때는…” “너만 힘든 게 아니다” 같은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아서다. 청년의 민생을 개선하겠다며 국회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던 젊은 정치인들은 뭔지 모를 ‘공수처’ ‘검찰개혁’ ‘과거사’ 같은 것에만 집착한다. A가 탄 것만 같은 저 오토바이는 기댈 곳을 잃은 것 같다.

2020년 마지막 글엔 희망 섞인 내용을 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년 1분기에도 안정적인 백신을 접종할 수 없다는 소식에 더 그랬다. 그저 A 같은 평범한 20대들이 연말을 연말답게 보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하준호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