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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탄생 희한한 250주년…올 한해 '한 것'과 '못한 것'은

중앙일보

입력

독일 바이마르의 한 상점 창문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베토벤의 조각상. 올해 탄생 250주년이었던 베토벤의 기념 공연과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AFP=연합]

독일 바이마르의 한 상점 창문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베토벤의 조각상. 올해 탄생 250주년이었던 베토벤의 기념 공연과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AFP=연합]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공연장인 사우스뱅크 센터.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4시간짜리 공연을 열었다. 180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마라톤 공연의 212년 만의 복사판이었다. 당시 지휘를 맡았던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새로 쓴 두 교향곡과 한 개의 피아노 협주곡 등을 연주하며 빈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로 입지를 확인했다. 3월 런던 공연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이달 13일 이를 되돌아보며“성대하고 야심찬 공연이었다”고 평한 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모든 것이 멈췄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기 때문이다. 공연장이 줄줄이 문을 닫고 베토벤과 관련한 의미있는 기획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베토벤 2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은 전 세계에서 오래 전부터 계획됐다. 베토벤의 출생지인 독일 본에서는 기념관인 베토벤 하우스가 주관하고 독일 정부가 후원하는 ‘베토벤 기념 위원회’가 2016년 발족했다. 이들은 공연, 전시 뿐 아니라 새로운 작품 위촉 등 수많은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대로 진행된 것은 많지 않다. 독일의 공영 방송 DW(Deutsche Welle)는 16일 기사에서 올 한해를 돌아보며 “장애물투성이의 베토벤 기념해였다”고 했다. 국내외의 성대했던 베토벤 계획 중 코로나19로 불가능했던 것과 성사된 것을 나눠 살펴본다.

무산된 베토벤 프로젝트

베토벤이 20대 초반까지 머물렀던 독일 본은 그의 세례일인 12월 17일을 기려 지난해 12월 17일부터 1년 동안 매일 여는 공연을 기획했다. 1년 내내 본의 어디에선가는 베토벤이 연주되고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3월 13일부터 7월 말까지 연주가 중단돼 ‘릴레이’의 의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8월 이후 공연은 상황에 따라 취소와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독일 본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 계획했었던 리버 크루즈의 배. [사진 베토벤 250주년 기념 위원회/Beethoven Jubilaums GmbH]

독일 본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 계획했었던 리버 크루즈의 배. [사진 베토벤 250주년 기념 위원회/Beethoven Jubilaums GmbH]

3월 예정됐던 재치있는 행사도 취소됐다. 베토벤은 본에서 20년, 빈에서 37년을 보냈고 결국 빈에 묻혔다. 그의 삶을 이룬 두 도시, 독일 본부터 오스트리아 빈까지 배를 타고 강을 여행하는 리버크루즈 프로젝트였다. 본래 3월 12일~4월 19일 총 14개 도시에 정박하며 공연, 강의, 참여 프로그램을 계획했지만 팬데믹으로 취소했다. 대신 아티스트들만 배 안에서 공연을 열어 온라인 중계했다. 스케치만 남은 베토벤 10번을 인공지능이 완성시켜 초연하려 했던 계획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오랜 기간이 필요한 전곡 공연들도 취소해야만 했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독일 브레멘의 체임버 필하모닉과 독일에서 열 예정이었던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 공연이 대표적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는 3월 코로나19에 감염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 연주를 포기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베토벤 전곡 공연이 대부분 사라졌다. 특히 정확하고 완벽한 연주로 유명한 미국의 에머슨 현악4중주단이 5~6월 내한해 베토벤의 현악4중주곡 16곡을 모두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6번의 공연 모두 코로나19로 취소했다.

디지털로 가능했던 것

7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더하우스콘서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릴레이 공연.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7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더하우스콘서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릴레이 공연.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무산된 아이디어는 디지털에서 영토를 찾아냈다. 콘텐트의 분량을 무한히 담을 수 있는 온라인의 영역에서 베토벤 250주년 프로젝트는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무엇보다 디지털의 힘을 빌린 ‘풀 스토리’가 다수 나왔다. 본의 베토벤 하우스는 3월 28~29일 중 총 24시간동안 유튜브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베토벤을 조명하는 온라인 페스티벌을 열었다. 어린이를 위한 공연으로 시작해 강의, 토론, 인터뷰, 현대 예술가들의 베토벤 재해석까지 담았다. 베토벤 하우스는 또 자연에 유독 애정이 깊었던 베토벤을 기리며 ‘전원(Pastoral) 프로젝트’를 6월 열어 총 4시간 분량의 연주, 토론, 다큐멘터리 영상을 라이브 스트리밍 했다. 본 태생의 피아니스트 수잔 케셀은 47개국 260명의 작곡가에게 베토벤을 주제로 한 260곡을 위촉해 이를 매일 연주해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는 베토벤의 세례일인 이달 17일 마무리됐다.

국내에서도 현장 청중을 제한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제공한 베토벤 마라톤 공연이 열렸다. 더하우스콘서트가 7월 31일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 13시간 동안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진행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연주회였다. 피아니스트 이경숙, 문지영, 박종해 등 총 32명이 한 곡씩 맡아 쉬는 시간 없이 연주를 이어갔다.

텔레그래프는 “공연장에 못 가는 청중 사이에 음반의 ‘미니 붐(mini-boom)’이 나타났다”고 표현했다. 유니버설뮤직이 도이치그라모폰(DG) 음원을 중심으로 만든 베토벤 전집(CD 118장, DVD 2장)은 판매가 50만원 선이었던 국내 수입반이 완판됐고, 워너뮤직 최초의 베토벤 작품 전집(CD 80장, 20만원선)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밖에도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파질 세이, 조너던 비스, 한국에선 손민수가 베토벤 소나타 32곡을 전곡 녹음해 내놨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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