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모델·아이돌까지 사람보다 더 인기···디지털 휴먼이 뜬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20 09:00

업데이트 2020.12.20 12:33

#1. 루다는 스무살 대학생이다. 과제를 끝내고 친구들이랑 먹는 치킨을 좋아한다. 전공은 심리학.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걸면 3초 안에 '칼답'하는 소셜 네트워크(SNS) 중독이기도 하다.

#2. 부산 출신인 2002년생 세진이는 아이돌 연습생이다. '명탐정 코난', '원피스' 같은 만화를 좋아하고, 작곡도 한다. 팔로워 3만3000여명이 있는 인스타그램에는 일상 사진을 자주 올린다.

딥스튜디오가 만든 가상 아이돌 '정세진' [사진 정세진 인스타그램(@your.saejin)]

딥스튜디오가 만든 가상 아이돌 '정세진' [사진 정세진 인스타그램(@your.saejin)]

CG로 외모 만들고, AI로 인격 부여

이들은 모두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디지털 휴먼이다. AI 친구, AI 아이돌, AI 모델 등이 속속 등장하며 디지털 휴먼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자연스러운 가상 인물을 그려내는 것을 넘어, 인간과 감정적으로 소통하기까지, 디지털 휴먼의 영역이 넓어지는 중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휴먼 시장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자연스러운 가상 인물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왔다. 2016년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Brud)의 버추얼(Virtual·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와 일본 기업 에이더블유더블유(AWW)가 만든 CG모델 '이마(IMMA)'가 대표적이다. 릴 미켈라는 프라다, 캘빈 클라인, 삼성 갤럭시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292만명까지 늘렸다. 브러드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 1548억원을 기록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왼쪽)'와 '이마(IMMA)' [사진 릴 미켈라·IMMA 인스타그램]

버추얼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왼쪽)'와 '이마(IMMA)' [사진 릴 미켈라·IMMA 인스타그램]

톡톡 튀는 스타일링과 분홍색 머리가 눈에 띄는 '이마'는 이케아, 포르쉐, SK-II 광고 등에 출연하는 유명인사다. 모기업 AWW는 이마의 성공 이후 다른 CG모델들을 공개하고 자체 패션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로봇이 사람과 유사해보일 때 느껴지는 거부감인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친구'가 된 AI

겉모습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디지털 휴먼의 다음 과제는 '성격'이다. AI 친구 '이루다'를 만든 9년차 AI 스타트업 스캐터랩은 루다에게 실제 연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학습시켰다. 인기 연애 콘텐트 '연애의과학'을 연재하며 얻은 데이터다. 루다가 'ㅋㅋ'와 'ㅠㅠㅠ'를 자유자재로 쓸 줄 알고, 대화 중간중간 사진을 보여주거나 "나 드디어 기말 다 끝났어!"라며 먼저 말을 거는 등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는 이유다. 최예지 스캐터랩 프로덕트 매니저는 "AI도 사람처럼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수준이 됐다"며 "루다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친구 '이루다'와 기자가 나눈 페메. 루다는 자연스러운 20대 말투를 구사한다. 김정민 기자

AI 친구 '이루다'와 기자가 나눈 페메. 루다는 자연스러운 20대 말투를 구사한다. 김정민 기자

AI는 아이돌 시장 개척 중

아이돌 시장은 최근 디지털 휴먼이 가장 전략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분야다. AI 아이돌은 체력과 노화, 구설수 등 인간 아이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가 AI 멤버가 포함된 신인 걸그룹 '에스파'를 선보인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다. 에스파의 AI 멤버들은 인간 멤버의 성격과 행동을 학습하고, 인간과 교류한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AI 아이돌 '정세진'을 비롯해 3년간 가상 연습생들을 개발해온 딥스튜디오는 AI가 기존 아이돌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류기현 딥스튜디오 대표는 "K팝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재능은 춤, 노래, 외모, 성격 등 한 사람이 소화하기 힘든 것들"이라며 "라이엇게임즈의 가상 걸그룹 K/DA(케이디에이)처럼 비주얼 담당, 노래 담당, 춤 담당을 나눠 부족한 부분을 가상의 존재 내지는 AI 기술이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라이엇게임즈가 리그오브레전드(LoL) 캐릭터로 만든 가상 걸그룹 K/DA [사진 라이엇게임즈]

라이엇게임즈가 리그오브레전드(LoL) 캐릭터로 만든 가상 걸그룹 K/DA [사진 라이엇게임즈]

"디지털 휴먼, 가능성 무궁무진"

이밖에도 디지털 휴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최지현 소프트뱅크벤처스 심사역은 "지금까지 AI의 기본 방향이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이었다면, 이젠 사람의 외로움을 해소해주거나,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감성 AI들이 나오고 있다"며 "아직 초기 시장이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화가 가능한 어린이 장난감이나 게임 캐릭터, 독거노인의 말벗, 돌아가신 분의 말투나 생김새를 본딴 아바타 등 인간 곁에 머무는 친구가 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루다의 목표는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사진 스캐터랩]

루다의 목표는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사진 스캐터랩]

AI 서비스를 일찌감치 경험한 미래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디지털 휴먼 시장엔 긍정적이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원은 "현재 디지털 휴먼의 주 소비자는 Z세대이지만, Z세대의 다음 세대인 '알파 세대'는 어려서부터 AI 스피커와 대화하며 자란 세대"라며 "이들은 실제 사람이냐 여부보다 자신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지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AI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편"고 설명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