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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기회조차 사라졌다"...코로나 1년, 취준생의 자조

중앙일보

입력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가혹한 한 해인 것 같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한 올해 초 취업 준비를 시작한 사무직 지망생 이모(25)씨 얘기다. 이씨는 17일 "원서를 낸 회사에서 사흘 전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채용을 잠정 연기한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요즘 채용 공고도 안 뜨는데 그나마 믿었던 회사에서 문자를 받고 너무 서글펐다"고 말했다. 이씨는 2월~4월까지 토익시험도 취소돼서 상반기를 통째로 날렸는데 하반기 들어 상황이 더 안좋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의 한 공무원 고시학원 복도에서 공부하는 취업준비생. 뉴스1

서울의 한 공무원 고시학원 복도에서 공부하는 취업준비생. 뉴스1

취업 한파 속에 코로나19 장기화라는 악재까지 만난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채용문은 좁아지고 코로나19 여파로 스펙 쌓기도 여의치 않아 ‘불합격할 기회조차 사라졌다’는 자조가 터져 나온다. 2년째 취업을 준비중인 김모(29)씨는 “작년보다 올해는 시험 본 횟수가 확 줄었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 자체가 좁아지는 것 같아 절망적”이라고 토로했다.

불확실한 채용 일정에 ‘한숨’ 

취준생들은 ‘불투명한 채용일정’에 가장 크게 낙담하고 있다. 경영 직군에 지원중인 1년 차 취준생 이모(27)씨는 “지난 5월 지원한 회사에서 ‘코로나로 신입 교육이 힘들다’며 이메일로 채용 연기 소식을 알렸다”며 “그 후 약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 해양경찰직을 준비한 황모(25)씨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상ㆍ하반기 채용이 모두 연기됐다”며 “코로나로 모집 기회가 감소했고 채용 일정도 연기돼 많은 공시생이 비슷하게 허탈해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시민이 일자리정보게시판을 지나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시민이 일자리정보게시판을 지나고 있다. 뉴스1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2020년 11월 고용동향’에서도 취준생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전 연령대에서 취업자 수가 줄어든 가운데 특히 청년층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15~29세(-24만3000명)와 30대(-19만4000명)의 일자리가 가장 많이 사라졌다. 기업들이 코로나 사태로 신규 채용계획을 철회하거나 연기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스펙 쌓기’도 물거품 돼 

취준생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스펙 쌓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업 시 필수 요건으로 여겨지는 자격증 시험이 코로나로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마케팅 직군 취업준비생 김모(24)씨는 “일본어능력시험(JLPT)은 일 년에 두 번 있는 시험인데 코로나 여파로 서울권에선 두 차례 다 취소됐다”며 “토익이나 컴퓨터활용능력 시험도 번번이 연기되거나 취소돼서 학원비를 날린 적도 많다”고 했다. 금융권 취업준비생 이모(25)씨는 “가산점이 붙는 투자자산운용사 시험은 일 년에 3번 있는데 코로나로 2번이나 취소됐다”며 “계획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게 틀어졌다”고 털어놨다.

“취업난 지속…공공 인턴 늘려야”

전문가들은 코로나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취업난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나빠 원래도 고용이 힘든데 코로나까지 덮쳐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고 있다”며 “정부가 기업 규제를 풀어 청년층이 가고 싶어하는 민간 일자리 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마냥 채용을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이 좋아질 때까지 정부가 청년들에게 수당으로 돈을 주기보다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공공 인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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