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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마을에 세워진 떠돌이 개 동상…"모든 유기동물에 바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릭은 사람들에게 꼬리를 흔들거나 손을 핥는 개는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이 떠돌이 개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걸 막지는 못했다”

동유럽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근교의 한 마을 주민들이 떠돌이 개의 동상을 세웠다. 12년간 마을에서 살았던 개 ‘조릭’이 주인공이었다. 올해 초 조릭이 한 가족에 입양돼 마을을 떠나자 조릭을 그리워한 주민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조릭을 본뜬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동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돈은 주민들이 각출했다.

에스토니아 탈린 칼라마하 지역의 한 쇼핑센터 앞에 떠돌이 개 '조릭'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AP=연합뉴스

에스토니아 탈린 칼라마하 지역의 한 쇼핑센터 앞에 떠돌이 개 '조릭'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AP=연합뉴스

마을 쇼핑센터 앞에 세워진 동상에서 조릭은 함께 지내던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마을 주민들은 조릭과 함께 살던 개가 있었지만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이후 조릭이 길고양이들과 함께 먹고 자는 등 어울려 다녔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조릭은 약 12년 전 북탈린 칼라마하의 항만 석탄 창고 쪽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뒤 쭉 칼라마하 지역을 지켜왔다. AP는 조릭이 에스토니아인과 러시아인 주민으로 갈라져 있던 지역 사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마을에는 ‘조릭’이라는 이름의 카페도 생겨났다.

조릭의 동상을 세우자고 처음 제안한 지역 주민 하이키 발너는 “조릭은 칼라마하 지역의 모두가 아는 개였다. 조릭은 젊은이와 노인, 에스토니아인과 러시아인 주민들의 마음을 두드렸다”며 “조릭은 지역사회 통합의 축이었다”고 말했다.

떠돌이 개 '조릭'. AP=연합뉴스

떠돌이 개 '조릭'. AP=연합뉴스

주민들은 정기적으로 조릭의 끼니를 챙겨줬고, 일부 주민들은 조릭을 위해 따로 소고기를 사 올 정도였다고 발너는 이야기했다. 다만 올해가 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조릭을 입양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조릭을 통제하려 할 때마다 조릭은 그저 도망쳤다”며 “조릭은 자유로운 영혼의 개였다”고 했다.

조릭을 입양한 빅토리아 게르는 집 뒤 정원에 조릭의 집을 따로 마련했다. 게르는 “조릭은 특이한 개”라면서 “조릭은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고, 쓰다듬을 받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게르는 “아마도 살면서 사람한테 다친 적이 있어서 사람을 안 믿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입양 직후 발너는 다시 도망쳐 원래 지내던 길거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나이가 들어 도망치는 것도 어려워지며 그대로 게르의 집에서 지내게 됐다고 AP는 전했다.

조릭의 동상 뒤로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조릭의 동상 뒤로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발너는 조릭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입양을 보내야 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조릭은 너무 나이가 많이 들었다. 철로나 트램 선로, 아니면 도로에서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차들이 조릭을 피해 다녀야 했다”며 “조릭을 위해서라도 조릭을 길거리에서 옮겨야 했다”고 했다.

주민들은 조릭뿐 아니라 다른 모든 유기 동물들에게 조릭의 동상을 헌정한다고 밝혔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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