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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퍼스펙티브

윤석열 박해 가세…“종교가 권력에 부역해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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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무법 시대의 거짓 예언자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어제 법무부에 의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는 무법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다. 법은 절차와 정당성을 의심받았다. 누가 승복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의 2개월 정직에 서명하면 윤 총장은 징계를 무효로 해달라고 문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게 된다. 대통령은 윤 총장을 그냥 해임했으면 될 일을 책임을 조금이라도 면하려는 심산인지 우물쭈물하다 결국 ‘피고 문재인’ 신세로 떨어지게 생겼다. 민주당 정권의 사람들은 윤석열도 잘라냈고, 윤석열을 감방에 보낼 수 있는 공수처법 개정안도 통과됐다고 자축하는 모양인데 글쎄, 꼭 그럴 일만도 아니다. 권력이 무법 시대를 만들면 무법의 피해는 정권이 입게 마련이다. 끝내 무너지고 비참하게 나뒹구는 건 지배자들이다. 우선 민심이 떠난다. 저항 때문에 소모가 많다. 국내의 분열과 증오가 적국을 대하는 것 보다 커진다. 외침이라도 맞게 되면 임진왜란 때처럼 도와줄 국민이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면 흔히 “하늘이 버렸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탈선한 검찰개혁을 우상으로 숭배 #분열된 국민, 황폐한 나라가 개혁? #‘기도하는 사람들’ 평신도의 반격 #“정치에 절망해도 정의 살아있어”

하늘이 권력을 버리는 이야기로 구약성경에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서 ‘역대기(歷代記)’ ‘열왕기(列王記)’만큼 실감 나는 것도 없다. 신심 깊은 왕들이 권력이 강화되자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남의 것을 빼앗는 등의 죄악에 빠지는 기록들이다. 처음부터 나라를 분열시키고 백성을 고통에 빠트렸던 왕도 있지만 대체로 정권 초반엔 선정을 베풀고 싶어 했다. 문제는 권력의 맛을 알고부터다. 왕은 교만해져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와 같은 하나님이 주신 법을 어기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역사서에 따르면 권력자의 교만을 완성시키는 무리는 거짓 예언자들이다. 원래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겨졌다. 정권에 굴종하지 않고 공동체의 보편적인 상식과 원칙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고하는 게 그의 임무다. 그러나 권력과 내통해 왕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권의 부역자로 타락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아합이라는 왕은 전쟁을 하고 싶어 했는데 거짓 예언자들 400명이 정치의 무대에 등장해 “(전쟁터에) 진군하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기실 것”이라고 아부했다. 반면 단 한 명의 참 예언자 미가야라는 사람은 억지로 왕 앞에 끌려 나와 “온 이스라엘(백성들)이 이산 저산에 흩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재앙을 선언하셨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미가야는 거짓 예언자한테 뺨을 맞고 아합 왕의 명령에 따라 그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가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미가야는 그러나 “왕께서 전쟁에서 평안히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왕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정권은 무너지고 400명의 예언자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구약성경 역대기 하편 18장).

문재인 정권은 권력의 실세들이 범죄를 저질러 수사를 받게 되자 갑자기 검찰개혁 얘기를 꺼내 들었다. 과거 정권 사람들을 잡아넣을 때는 훌륭한 검사라고 칭찬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졸지에 죄인으로 몰아갔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가 이처럼 심한 정권도 없었다. 검찰개혁은 졸지에 이 정권의 우상이 되었다. 그 내용이라는 것도 그저 ‘윤석열에 누명 씌우고 박해하기’가 다여서 노무현 시대 때 널리 공감을 받았던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실체는 싹 증발해 버렸다.

여기에 ‘종교계 100인 시국선언’이니 정의구현사제단이 끼어든 ‘천주교 사제·수도자 선언’이니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니 하면서 소위 종교 지도자들이 맞장구를 쳤다. 이들의 행동은 아합 왕 시대 400명의 정권 부역 종교인들의 패턴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종교인들은 추미애에 의한 윤석열 직무배제가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맹종할 경우 검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은 유지될 수 없다”(조미연 판사)는 판결로 무효가 되자 갑자기 정치 무대에 나타났다. “검찰을 개혁하고 윤석열을 해임하라”는 똑같은 곡조의 노래도 불렀다. 천주교의 사제·수도자 선언에 참여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때 통역을 맡았던 실력자라고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걸까. 그 교계의 실력자가 대검을 찾아가 추미애 장관이 임명한 감찰부장이란 사람을 만난 며칠 뒤 ‘천주교 선언’이 나왔다. 권력과 종교의 내통이 의심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신앙의 역사에서 정권에 부역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고 민중을 속일 뿐 아니라 나라까지 팔아먹는 거짓 예언자들의 존재가 드문 일은 아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권력에 팔아먹고 교단의 안전과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제와 목사들이 적지 않았다. 현대사에서 전형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히틀러 총통의 나치당 집권 시기(1933~45)의 독일 주교단과 유럽 가톨릭계의 행태를 들 수 있다. 2003년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공개된 바티칸 비밀문서들에 따르면 독일 주교단은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마자 회의를 열어 나치 정당에 대한 경계 및 금지령을 철회하고 신임 총리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다. 주교단은 가톨릭 신도들에게 ‘정당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권고했다. 이는 쿠데타를 일으킨 바 있고 폭력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뚜렷해 신도들의 나치당 가입을 금지했던 불과 3년 전 주교단의 결정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사정은 개신교도 다르지 않았다. 나치당은 정강정책에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과 투쟁했다. 그러므로 성서와 교회에 대한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요설을 담았는데 이는 당시 독일 교계에 히틀러를 그리스도처럼 우상숭배하고 유대인 학살을 찬성, 묵인하는 풍조를 낳았다.

한국 사회의 장점들이 대통령 권력과 입법 권력을 통째로 쥔 세력에 의해 개혁의 이름으로 하나씩 파괴되고 있다. 전체주의적이고 일방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와 법치, 3권분립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은 분열하고 나라는 황폐해 간다. 분열하고 황폐한 개혁이라면 누구를 위한 개혁일까. 정치 무대에 거짓 예언자들이 득세했다 해서 저 낮은 곳, 후미진 골방에 참 예언자가 아주 없지는 않다.

지난 14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천주교·개신교의 평신도가 주축인 모임이 탄생했다. 카카오톡과 구글에서 만난 이들은 사흘 만에 1485명의 서명을 받아 “검찰개혁 빙자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거짓 종교인들을 규탄한다”는 성명서로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기도하는사람들’의 연락 간사 역할을 하는 임삼진 새문안교회 성도는 “정치에서 절망하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살아있다고 믿는다. 양심의 존재가 하나님의 증거”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천주교 신도는 “죄의 끝은 사망이고 무법 시대의 종말은 시작되었다”고 예언자처럼 외쳤다.

‘기도하는사람들’ 시국 성명, 교회·성당 1000여 곳서 개별적 참여

1934년 “예수는 아리안인”이라고 주장한 신학자 루드비히 뮐러와 악수를 나누는 아돌프 히틀러.

1934년 “예수는 아리안인”이라고 주장한 신학자 루드비히 뮐러와 악수를 나누는 아돌프 히틀러.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50년이 다 돼가는 구 운동권 세력이라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기도하는사람들)’은 12월 14일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평신도 네트워크다.

천주교와 개신교 사람들이 함께한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전개되는 민주주의 파괴 현상이 히틀러의 독일형 전체주의나 차베스·마두로의 베네수엘라형 동원사회주의 요소를 일부 갖고 있다고 보는 몇몇 신자들에 의해 연결이 시작됐다. 인권과 법치, 개인의 자유와 3권분립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지켜내자는 정신을 공유한다.

10일 구글 링크를 통해 ‘검찰개혁을 빙자해 정권에 부역하는 거짓 종교인 규탄’ 성명서 초안이 회람되자 사흘 만에 1485명이 실명과 소속 교회를 밝히며 서명에 참여하는 폭발력을 보였다. 서명자는 개신교 교회 659곳, 천주교 성당 359곳 등 1000여 곳에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했다. 서명자들은 연락 간사를 중심으로 국가·사회적 차원의 기도 제목을 올려 각자 골방에서 간구하고 이를 온라인 성명서로 표명하는 이슈 파이팅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대표, 조직, 회비, 모임이 없는 느슨한 온라인 네트워크를 유지한다는 게 임삼진(새문안교회)·유철환(상동교회)·김종연(원신흥동성당)·이덕로(영광교회)·김계옥(일산밝은교회) 연락 간사들의 입장이다. 다음은 지난 14일 첫 성명서 요지.

“1930년대 유럽 가톨릭 교회의 지도부는 나치와 손을 잡고 유대인 학살을 묵인 또는 방조하고 전체주의 통치에 협조함으로써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남겼다. 한국에서는 최근 검찰의 감찰부장이 천주교의 고위 사제를 불러 면담한 뒤 정의구현이라는 미명 하에 정치시위가 일어났다. 종교는 권력에 부역해선 안 된다. 더는 그대들의 정치적 욕망과 신앙을 엮지 말라. 종교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어떤 시도에도 우리는 굴하지 않는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