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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조지 오웰도 울고 갈 부동산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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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청와대는 연초부터 “1주택이 정부 부처의 새로운 인사 기준이 되고 있다”고 홍보했다. 실제로 지난달 임명된 차관들 상당수는 세종시 아파트를 처분했다. 공무원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아 한 번도 실거주하지 않고 거액의 차익을 거뒀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는 서울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핵심 부동산 정책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제시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2006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129.71㎡)를 5억2300만원에 사들였다. 이 중 3억원을 대출받았고, 지금 10억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거뒀다. “여인숙에서 1~2년 사는 분들이 있다”면서 정부의 호텔 방 활용 방안을 두둔한 방송인 김어준씨는 집값의 70%를 대출받아 2층 단독주택을 사들였다. 그 주택은 10억원 안팎 올랐다. 이게 바로 영혼까지 끌어모은 ‘영끌’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당 의원 90% 아파트에서 살고 #변창흠 ‘영끌’해 10억원 시세차익 #『동물농장』 우화 현실서 보는 듯

아무리 봐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빼다 박았다. 오웰이 1945년 내놓은 이 소설은 민주를 앞세운 스탈린 폭정의 실체를 고발한 정치 우화다. 1917년 2월혁명에서 1943년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한다. 지주와 상인을 몰아내고 국민 모두 평등하게 살자고 했지만 거짓 선동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잡자 공산당 간부가 특권층이 되고 국민은 영구적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 우화는 정치 선동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기득권층을 몰아낸 혁명 세력은 더 강력한 착취계층이 됐다. 어떤 반대의견도 나오지 않게 공산당 일당 지배의 법률을 만들고 언론에 재갈을 물린 뒤 공정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결과의 평등을 세뇌했다. 그러나 소련은 70년 만에 자멸했다. 체제 경쟁을 벌인 미국이 소련을 향해 총 한 방 쏘지 않았는데도 위선 위에 쌓아올린 사회체제가 저절로 무너지면서다.

한국의 부동산 정치에도 동물농장 우화가 어른거린다. “아파트 환상을 버려라”(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호텔 방을 주거용으로 바꿔 전·월세로 내놓겠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 만들겠다.”(김현미 국토부 장관), “임대차 3법은 성장통이다”(윤성원 국토부 1차관), “(44㎡ 임대주택에) 신혼부부에 어린아이 두 명도 가능하겠다”(문재인 대통령). 다 나열하면 끝이 없다.

그래 놓고는 여당 의원 90%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조지 오웰이 울고 갈 일 아닌가. 위선의 극치 아닌가. 자신들은 아파트를 최소 한 채씩 꿰차고 있으면서 국민에겐 환상을 버리고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공급돼야 할 임대주택을 홍보하는 건 도대체 왜인가. 소설 속에서 돼지들을 선동해 권력을 차지한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 일당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며 우중(愚衆)을 속이고 독재를 합리화하던 구절이 떠오른다.

많은 국민은 마음이 불편하다. 세입자는 물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 평생 어렵게 마련한 내 집 소유자까지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공시가격을 해마다 급격히 올리는 것도 모자라 24차례에 걸친 ‘집값 들쑤셔놓기 대책’의 여파로 주거비가 치솟고 있다. 집값을 너무 올려놓는 바람에 전국이 집값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집에 살아도 세금이 너무 올라 나라에 월세 내는 세상이 됐다는 푸념이 메아리친다.

빈곤과 전쟁에 시달리는 나라에선 몸 하나 누일 수 있다면 안식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집은 생활 편의를 갖춘 최고의 안식처이자 자산의 축적 수단이다. 다들 주거 환경이 좋은 곳에 살려고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했지만, 맞서 이길 수 없는 것이 자산시장이다. 주식·외환은 물론이고 부동산도 예외가 아니다. 과도한 규제와 세금은 오히려 주택 공급을 위축시켜 민생을 어렵게 할 뿐이다. 지금이라도 동물농장 같은 위선의 정책 폭주를 멈춰주기 바란다. 국민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