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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박물관 순례기' 연재하는 유홍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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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문화유산 답사로 이름을 날린 유홍준(54.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겸 명지대 문화예술 대학원장이 다시 펜을 들었다.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이후 5년 만이다.

"전공 공부에 더 충실하고 충전한 뒤 쓰려고 일부러 휴식 기간을 두었다"고 말문을 여는 유교수. 그가 절차탁마한 답사기는 '국토 박물관 순례기'라는 이름으로 17일부터 본지에 연재된다. 그를 만나 이번 새 답사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편집자]

"내가 안 가봐서 못 쓰는 곳은 없다. 답사여행의 비장처로 남겨 두었던 곳이었을 뿐이다." '국토 박물관 순례기'를 연재할 유홍준 교수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다만 그동안 평생 연구라고 자부해온 추사 김정희의 일대기를 그린 '완당 평전'을 펴내는 일과 '화인 열전' 등 집필을 위해 그는 답사 여행기를 잠시 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 서문에 앞으로 답사기를 쓰긴 쓰겠지만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고 썼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하는 유교수는 "내가 다시 답사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청소년들이 보낸 편지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유교수의 답사기를 보고 청소년들은 "왜 충청북도만 빼놓았느냐"는 등 귀여운 항의성 편지를 보내곤 했다는 것이다.

이번 연재에서 서울.경기.충청도.경상도.제주도 등 전국을 시대와 지역을 안배해가며 쓰기로 한 것은 바로 이 때문. 절.서원.양반집 등 건축물과 흔적만 남아 있는 유적지, 다산 정약용.퇴계 이황 등 인물의 고향,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조형물들에 인간의 이야기를 불어넣고 현재적 의미까지 부여할 예정이다.

"숨겨놓은 답사처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항상 첫 손가락으로 꼽던 합천 영암사터를 비롯해 거창 동계고택, 안동 묵계서원 등을 얘기한다.

"답사라면 여행이 강조된 것이지만, '국토 박물관 순례'는 우리 국토를 박물관으로 보고 공부하며 보자는 뜻을 담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이어 유교수는 "사람들은 나보고 한곳을 열번씩 가면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본질을 이해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갈 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긴단다.

1990년대 초 문화답사를 전 국민의 고급취미 분야로 개척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를 실감케 했던 유교수. 이번 답사기 연재를 마치고 책으로 펴낸 뒤에는 한동안 쉬었던 대중 강연도 다시 시작해볼 것을 구상 중이다.

그는 "사실 국립 중앙박물관장이 되면 사람들이 박물관을 더 가깝게 여기도록 박물관에서 강의해 보려고 했다"(그는 올 초 중앙박물관장 후보로 올랐다가 자진 사퇴했다)며 "소극장 학전에서 강의할 때는 인기가 너무 좋고 답사 때 참가하는 회원이 1천2백여명에 달해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능력보다 밖으로 이름이 더 커지니 불안감이 들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유교수는 "글을 쓸수록 더 두렵고 힘들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A4 용지 크기의 전용 6백자 원고지를 만들어 몽블랑 만년필로 글쓰기를 고집하는 그는 한번 글을 쓰면 제자와 아내에게 서너차례 보이고 예닐곱번을 고치는 것은 보통이다.

특히 이번 연재하는 글은 전문가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할 예정이다. 예컨대 백자를 다룰 때는 도자사를 연구한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에게 글을 보이는 등 빈틈이 없도록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그는 "내 글이 쉽고 편하다는 평은 형식적인 측면의 이야기일 뿐이고, 내 글을 통해 머릿속에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강한 인상이 박힌다는 것이 오히려 맞는 표현"이라며 "이번 연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5년 전 그 '느낌'을 되살리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수현 기자<shinna@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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