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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베테랑 전문의' AI 의사, 한국은 100대 기업에 못 든다고?

중앙일보

입력

인공지능(AI)이 질병을 미리 알려주고, 평균 신약 개발 기간을 10년에서 3년으로 줄여주는 세상. 생각보다 머지 않은 미래다. 국내에서도 의료 AI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다. 저명한 학술지에 소개될 만큼 기술력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수준의 대규모 투자 유치 소식은 아직이다. 왜일까.

의사와 AI가 함께 질환을 판독하는 시대 [사진 셔터스톡]

의사와 AI가 함께 질환을 판독하는 시대 [사진 셔터스톡]

무슨 일이야

딥러닝 기반 국내 의료 AI 스타트업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눈에 띄는 곳은 '루닛'과 '뷰노'. 엑스레이·MRI·CT 영상 등을 보고 질환 신호를 읽어내는 AI를 만든다. 이들은 이달 초 보건복지부 인증 '30개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에 나란히 꼽혔다.
· 루닛의 폐암·유방암 진단 AI는 서울대병원·아산병원 등 국내 상위 10개 대형병원 중 7개가 사용한다. 정확도는 97~99%. 김은경 용인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1년 전 루닛 AI를 도입한 뒤 판독 수준이 균일하게 상향 평준화됐다. '경험 많은 베테랑 의사'급이다"며 "의사의 영상 판독 시간도 평균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20% 줄어 환자 상담 등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루닛이 유치한 누적 투자액은 600억원.
· 뷰노는 뼈 나이 판독 AI, 치매 진단 AI, 흉부·망막질환 진단 AI 등을 만든다. 자체 연구 결과 의사의 판독 시간을 40~50% 단축한다. 전국 의료기관 200여 곳이 뷰노의 AI를 쓴다. 누적 투자유치 250억원.
· 두 기업 모두 글로벌 기업에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 6월 루닛은 세계 1위 영상장비업체 GE헬스케어와, 뷰노는 일본 최대 의료정보 플랫폼 M3와 솔루션 판권 계약을 맺었다. GE와 M3의 의료 장비에 루닛과 뷰노의 기술이 각각 탑재된다는 뜻.
· 의료 현장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한부경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기존에 쓰던 캐드(CAD·20여년 전 나온 의료영상 분석 소프트웨어)는 정확하게 진단을 잘 못해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았는데, 요즘 AI는 정확도가 높아 의사들도 진지하게 참고한다"고 말했다.

서범석 루닛 대표(왼쪽), 김현준 뷰노 대표 [사진 각 사]

서범석 루닛 대표(왼쪽), 김현준 뷰노 대표 [사진 각 사]

산업·의료계는 뭐래

의료 AI에 대한 시장과 의료계 현장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의료 AI 시장은 2020년 5조원에서 2026년 49조원 규모까지 커질 전망(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
· 지난 1월 데이터3법 통과로 의료 데이터 활용이 쉬워졌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여러 기관 간 정보 연계가 가능해져 가명정보 활용이 수월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 AI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도 부쩍 늘었다. 한부경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AI 관련 교육, AI만 다루는 심포지엄 등이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 유리한 개발 환경도 장점. 김현준 뷰노 대표는 "한국은 수도권과 지방 대형 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편이라, 대규모 환자 데이터를 구하기 좋은 환경"이라며 "IT 인프라도 뛰어나 의료 AI 강국이 될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글로벌 시장은 크지만, 국내 시장의 성장 속도가 더디다.
· 2014년 이후 설립된 기업 중 누적 투자액 상위 100개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국내 업체는 없다(삼정KPMG). 이에 대해 뷰노에 투자한 백인수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이사는 "의료 AI 기업은 대개 본격적인 매출과 수익이 나기 전에 특례상장제도를 통해 상장을 한다. 한국 투자자들은 상장(IPO)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편이라, 공모가 기준 예측가능한 기업가치만큼만 투자하게 된다"며 "미국의 의료AI 스타트업들만큼 투자를 받긴 힘든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 아직 건강보험 수가(진료비)를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도 한계. 판독형 의료 AI는 병원이 자비로 도입해야 한다. 의료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의 김치원 공동창업자(서울와이즈요양병원 원장)은 "수가에 반영되지 않은 기술은 병원에 확산되기 어렵다"며 "의료 AI 기업이 매출을 내려면 하드웨어 기업에 솔루션을 팔거나, 판독형 AI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지금 수준의 의료 AI가 수가를 못 받는 건 해외서도 비슷하다"고 전했다.
· 완고한 의료계 리더십도 풀어야 할 과제다. 김은경 용인세브란스 교수는 "대형 병원이나 학회들이 'AI는 의사를 도와주는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하는데 아직은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어때

구글의 폐암 진단 AI 모델 [사진 구글]

구글의 폐암 진단 AI 모델 [사진 구글]

· 바둑 AI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 딥마인드는 지난해 AI 의료기기를 출시했다. 녹내장·당뇨망막증 등 심각한 안과 질환 50여 종을 30초 안에 판독하는 의료기기다. 유방암과 폐암, 전립선암 진단 보조 AI도 구글의 연구 분야다. 구글벤처스가 투자한 헬스케어 스타트업만 누적 300여개다.
· 의사의 판독을 돕는 AI를 넘어 질병을 예측하는 AI도 나오고 있다. 미국 기업 '하트플로우'의 AI는 관상동맥 CT를 보고 심근경색 등 심장 질환 가능성을 예견한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수술을 줄일 수 있다. 하트플로우는 미국, 영국 등에서 수가를 인정받았다.
· 최근 AI는 신약 개발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캐나다 제약 AI 조사업체 '벤치사이'가 과학자 330명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AI는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약 20%씩 줄일 수 있다. 일본제약공업협회는 더 나아가 50%까지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AI가 100만건의 논문 탐색, 1만건의 후보물질 검토를 빠르게 처리해 평균 10년의 개발 기간을 3~4년으로, 1조2000억원의 개발비를 6000억원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 신약의 평균 이익률이 2~5%임을 감안하면 유의미한 숫자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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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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