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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4만8천개 보석으로 그린 왕 상징물 ‘오봉산일월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61)

암살과 역모의 위협에 시달리던 ‘광해’(이병헌)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게 되고 도승지 ‘허균’(류승룡)은 용안(임금의 얼굴)과 똑 닮은 광대 ‘하선’(이병헌)을 물색한다. 왕이 아파 몸져누워 있던 보름 동안 광대 하선이 드디어 조선의 왕이 된다.

영화 '광해, 왕이 남자' 포스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광해, 왕이 남자' 포스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1200만명 관객을 기록한 한국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스토리는 자못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주상 전하 납시오”라는 큰 외침과 함께 왕의 옷을 입은 광대가 대전으로 들어서는 평범한 장면에서까지 말이다. 과연 광대가 국사를 얼마나 수행해낼 수 있을까. 얼마 못 가 엉터리라는 것이 탄로 나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가짜 왕은 수많은 대신이 양쪽으로 늘어선 가운데를 걸어와 의젓이 어좌(임금이 앉는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광대가 앉은 어좌의 뒤에는 해와 달을 같은 하늘에 품은 병풍이 둘러쳐져 있다. 병풍 속 그림이 바로 ‘일월오봉도’다. 가짜 왕 임에도 불구하고 일월오봉도가 찰떡같이 어울려 보였던 건 나만의 편견일까.

경복궁 근정전. [사진 문화재청]

경복궁 근정전. [사진 문화재청]

어좌 뒤 병풍 속에는 파란 하늘에 흰 달과 붉은 해가 좌우로 나뉘어 둥그렇게 떠 있고, 그 아래로 다섯 개의 산봉우리(오봉(五峯))가 우뚝 솟아 있다. 산 아래로 격랑을 일으키며 파도가 출렁이고, 병풍의 좌우 양쪽 끝으로 붉은 몸통을 드러낸 무성한 소나무가 짝을 이루며 서 있다. 이를 조선 시대에는 오봉도라고 불렀다. 여기에 해와 달의 상징을 더하니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다. 일월오봉도 대신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혹은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라고도 불렀다.

일월오봉도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림에 나타나는 해와 달은 음양을, 다섯 봉우리는 오행을 상징한다. 음양오행을 주관하는 이는 바로 국왕이다. 절대자가 다스리는 세계를 시각화한 것인 만큼 일월오봉도는 주로 병풍으로 그려져 조선 시대 왕이 앉는 자리 뒤에만 놓였던 특별한 그림이었으며 왕권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일월오봉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일월오봉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그런 일월오봉도는 조선 시대 궁궐인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내부에서도 볼 수 있다. 국보 제223호 근정전은 경복궁 내에서 가장 장엄한 중심 건물로, 왕위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적 의례가 행해지던 곳이다. 근정전 외에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놓여 있다.

이런 우리 국왕의 상징물인 일월오봉도를 보석으로 그린 곳이 있다. 국내 유일의 보석박물관인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익산보석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오봉산일월도’ 다. 형형색색의 보석으로 그림을 그리듯 오봉산일월도를 만들었다.

보석으로 그린 오봉산일월도는 박물관의 하얀 벽면과 대조를 이루며 전시실 한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림 속에 보이는 해, 달, 산, 소나무, 파도는 민족 번영의 염원을 담아 하늘, 땅, 자연을 표현한 것으로 자연의 다양한 색상을 표현하기 위해 총 4만8000여개의 보석을 박아 완성했다. 제각각 다른 색을 지닌 백옥, 마노, 터키석, 공작석, 오닉스, 추마노, 소달라이트, 진주패, 사금석, 목화석 등 17가지 종류의 보석을 사용했다.

17가지 종류의 보석, 총 48,000여개로 완성한 오봉산일월도. [사진 민은미]

17가지 종류의 보석, 총 48,000여개로 완성한 오봉산일월도. [사진 민은미]

지난 2002년 5월 개관한 익산보석박물관은 다양한 광물과 그 광물이 보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각종 보석·원석·주얼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보석박물관이다. 오봉산일원도 외에도 진귀한 보석과 원석 등 11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사실 익산은 예부터 보석으로 유명했다. 보석 세공술이 뛰어난 지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이유가 있다. 이 지역은 마한과 백제를 거치며 철기문화가 번성했던 곳으로 당시부터 금 세공술이 발전하면서 이후 탁월한 보석 가공술로 이어졌다. 백제의 세공술로부터 이어진 기술이다 보니 보석으로 그린 오봉산일원도의 장엄한 자태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어좌 뒤에 장식된 그림 못지않다. 해와 달을 품은 오봉산일월도에도 음양오행을 주관하는 절대자, 국왕의 위엄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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