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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 머리채 잡혔다" 길냥이 갈등 속 서울 지자체의 기지

중앙일보

입력

“길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이 캣맘 머리채를…”

 지난달 16일 국민청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캣맘 폭행사건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었다.

 청원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해 6월 벌어졌다. ‘다친 길고양이를 구조해달라’는 제보를 받고 서울 동대문구의 한 길가에서 고양이 포획을 시도하던 중 길고양이 구조를 혐오하는 일행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얼굴을 내리치는 바람에 청원인은 2주간 치료가 필요한 타박상과 찰과상까지 입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이 사건은 단순한 상해죄를 넘어 ‘캣맘’에 대한 혐오범죄”라며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과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고 밝혔다. 이 청원은 10일 현재 총 6933명의 청원동의를 받았다.

‘길고양이’ 둘러싼 갈등, 어쩌나

서초구가 운영 중인 '길고냥이 급식소'. [사진 서초구]

서초구가 운영 중인 '길고냥이 급식소'. [사진 서초구]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을 뜻하는 ‘캣맘’과 주민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입주민을 아파트 차원에서 고소하겠다고 윽박지르거나, 길고양이를 해치는 사건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최근엔 구청까지 나서 길고양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구청이 내놓은 대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고양이 급식소’다. 개인이 급식소를 마련해 먹이를 두도록 하지 않고, 구청이 급식소를 설치·관리해 주민 간 다툼을 줄이는 것이다.

 서초구는 잠원동 재건축지역에 남겨진 길고양이를 위해 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했다. 주변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급식소를 제작하고 상판엔 ‘서초구’ 로고와 안내 문구를 새겼다. 또 급식소마다 관리번호를 부여해, 민원 관련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가 관리하도록 했다.

 길고양이 중성화 모니터링은 물론, 급식 관리와 청결 관리까지 시작했다. 2017년 3곳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까지 동별로 각 1개소 18개의 고양이 급식소를 만든 서초구는 최근엔 재건축 지역에도 급식소를 마련했다. 서초구는 “내년에도 동물복지 행정을 위해 적합한 장소를 선정해 18개의 급식소를 추가 설치하고, 일반 주민에게도 다양한 의견을 받아 보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길고양이를 위한 겨울집도 제작했다. 바닥과 벽면에 단열시트를 붙여 한파를 이길 수 있는 피난처로 만들었다. 2018년부터 만든 고양이 겨울집은 150개에 이른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앞으로도 체계적인 동물보호 관리사업을 통해 주민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서초형 동물복지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와 도봉구는 ‘철제 급식소’ 설치

도봉구가 마련한 고양이 급식소. [사진 도봉구]

도봉구가 마련한 고양이 급식소. [사진 도봉구]

 서대문구와 도봉구는 포스코 건설과 함께 내구성이 높은 철제로 지어진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다. 서대문구는 “길고양이 증가로 인한 주민 갈등과 불편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4곳, 올해 들어 6곳에 자체적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고 중성화 사업도 병행해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급식소 9곳을 추가하면서 서대문구 길고양이 급식소는 총 19개로 늘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통해 길고양이로 인한 쓰레기봉투 훼손 등 주민 불편 사항이 줄고 동물 보호 의식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봉구도 최근 길고양이 보호 민간단체의 조언을 받아 쌍문동 등지에 5개의 급식소를 세웠다. 서대문구는 “급식소 모니터링이 쉽고, 동물 학대 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장소에 우선적으로 설치했다”며 “급식소별 관리 전담 캣맘을 지정해 책임관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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