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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 1만장 보내달라"…가격 인상 앞둔 ‘청주 쓰봉대란’

중앙일보

입력

‘1인당 1장’ 제한…마트 도는 ‘메뚜기족’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한 건물에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가 쌓여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한 건물에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가 쌓여있다. 최종권 기자

“쓰레기봉투를 팔고 싶어도 주문 자체가 안되네요.”

청주시 17년 만에 쓰레기봉투 가격 인상 #63% 높이자 사재기 기승…1인당 1장 제한 #“쓰레기소각량 증가로 가격 인상 불가피”

 지난 11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의 한 슈퍼마켓. 상점 주인 함모(73)씨는 텅 빈 쓰레기 종량제봉투 매대를 보여주며 한숨을 쉬었다. 함씨는 2~3주에 한 번꼴로 5ℓ·10ℓ·20ℓ·30ℓ·50ℓ·75ℓ짜리 쓰레기봉투를 종류별로 주문해 가게에 가져왔다.

 함씨는 “쓰레기봉투 가격을 올린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 손님 몇 명이 한꺼번에 수십장을 사 갔다”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주일 전부터 제작업체가 주문을 받지 않아 더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함씨는 이어 “쓰레기봉투를 구하지 못한 손님이 봉투가 있는지를 묻는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25년 장사를 하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했다.

 청주시가 내년 1월 1일부터 쓰레기봉투 가격을 평균 63% 올리기로 하면서 시민들이 ‘봉투 대란’을 겪고 있다. 쓰레기봉투 수요량이 급증하면서 골목 슈퍼나 편의점까지 품귀 현상을 보인다. 마트 여러 곳을 들러 쓰레기봉투를 사는 이른바 ‘메뚜기족’도 출현했다.

 청주시는 지난달 30일 쓰레기봉투 가격 인상을 고시했다. 내년부터 종량제 봉투 10ℓ는 190원→310원, 20ℓ는 370원→600원, 50ℓ는 890원→1450원으로 각각 인상한다. 불연성 폐기물 등을 담는 마대 20ℓ는 800원→1300원으로, 40ℓ는 1600원→3500원, 100ℓ는 4000원→650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기존 가격 인상 전에 제작·판매된 종량제봉투는 소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마트·편의점까지 쓰레기봉투 품귀 현상  

청주시는 지난달 30일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쓰레기 종량제봉투 판매가격을 고시했다. [청주시 홈페이지]

청주시는 지난달 30일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쓰레기 종량제봉투 판매가격을 고시했다. [청주시 홈페이지]

 가격이 오르기 전에 쓰레기봉투를 사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청주에선 지난 1일부터 사나흘 간 사재기가 극성을 부렸다. 가정주부 황모(43)씨는 “집에서 주로 쓰는 20ℓ짜리가 한 번에 230원이나 올라 당황스럽다”며 “판매량 제한 조처가 이뤄지기 전 마트 이곳저곳을 들러 100장을 넘게 싹쓸이 한 사람도 봤다”고 했다.

 이 때문에 쓰레기봉투 판매처 주문 건수는 대폭 늘었다. 지난 10일까지 청주시 종량제 봉투 판매소(3500여 곳)의 1일 평균 주문 건수는 500여 건으로 급증했다. 인상 고시 이전 1일 평균 주문 건수(120건~150건)보다 3~4배 많은 양이다. 황승서 청주시 자원정책팀장은 “지난달 5000장을 주문한 판매처에서 1만장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2008년 이후 한 번도 쓰레기봉투를 사지 않은 상점에서도 주문했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사재기를 막기 위해 지난 9일부터 1인당 판매량을 1장으로 제한했다. 이런 조처에도 쓰레기봉투 판매처의 재고량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한 마트 주인은 “한 달 치 비축한 쓰레기봉투가 일주일 만에 거의 다 팔렸다”며 “평소 장바구니를 들고 오던 손님들조차도 소액 물품을 산 뒤 쓰레기봉투에 넣고 가겠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쓰레기봉투가 귀해지자 주민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청주시 금천동에 사는 최모(40)씨는 “마트 5곳을 돌아 20ℓ짜리 봉투 2개를 겨우 구했다”며 “청주시가 시간 간격을 두고 가격을 인상했다면 이렇듯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만장 달라”는 판매처…12년 만에 주문한 가게도

충북 청주의 한 슈퍼마텟에 있는 쓰레기봉투 판매대에 75ℓ 봉투 일부만 비치돼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의 한 슈퍼마텟에 있는 쓰레기봉투 판매대에 75ℓ 봉투 일부만 비치돼 있다. 최종권 기자

 청주시는 2003년 이후 17년 동안 한 번도 쓰레기봉투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20ℓ 봉투 기준으로 수원과 부천은 600원, 용인과 대전은 660원, 고양 710원, 포항 800원, 창원 700원 등인 것과 비교하면 청주(370원)는 저렴한 수준이라는 게 청주시의 설명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청주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소각량이 해마다 10%씩 늘어나고 있어 소각 위탁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종량제봉투 가격을 63% 정도 올리면 쓰레기 처리비용의 주민부담률이 현행 26%에서 36% 높아지는 데 이 또한 환경부 권고(38%) 수준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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