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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나라 꼴이 왜 이런지 설명도 못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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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여론조사는 과학이다. 표본과 응답률만 잘 관리되면 틀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표본 선정이 어렵고 설사 잘 수집해도 실제 응답률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응답률을 높이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 때론 정무적 판단을 동원하는 모양이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나선 여론조사 결과를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이 정권이 들쭉날쭉한 여론조사를 들이대며 포퓰리즘으로 달릴수록 의심은 깊어졌다. 그럼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조사는? 그건 믿는다. 여러 조사 기관의 흐름과 추세가 대체로 같다.

부동산에 K방역이든 추 폭주든 #무엇 하나 정돈된 모습이 없는데 #‘잘한다’ 자찬만으로 정말 좋아질까

더 중요한 건 이유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보통 사람의 상식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매일매일 점입가경으로 달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폭주가 있다. 이젠 윤석열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한 징계위까지 열었다. 헌정 사상 최초다. 개각을 하는 마당에 대통령이 추 장관은 못 자르고 ‘권력기관 개혁’을 주문한 뒤다. 갈등이 추와 윤 두 사람 사이의 일인 양 딴청을 피우더니 검찰총장에게 잘못을 떠민 셈이다. 그런데 이 정권이 그토록 우려먹던 여론조사 결과론 추 장관 아웃이 압도적이다. 그때그때 다르다. 유리한 것만 여론이다.

‘부동산 블루’는 이 정부의 무능이 부른 상징이다. 온 국민에게 우울감과 열패감을 안겼다. 국토교통부 장관 교체는 만시지탄이다. 그런데 ‘문책 경질’이 아니었다고 한다. 장관 내정자는 반시장 기조가 전임자보다 더하다는 평가를 받는 코드 인사다. 그럴 거면 장관은 왜 바꿨나.

K방역도 있다. 음식점에서 샌드위치 먹는 건 되고 카페에서 빵 먹는 건 안 되는 게 K방역이다. 보수단체 집회엔 ‘살인자’란 극언까지 퍼붓더니 민주노총 시위엔 그런 비슷한 소리를 경찰이 들었다. 말로만 핀셋 대응이지 누더기 방역이다. 그때그때 다르다. 그냥 내가 정하는 게 법이다.

왜 그런 건지 설명은 없다. 대신 자기 자랑만큼은 깨알 같다. 정부 생색만 듣자면 세종대왕 정치가 따로 없다. 집권 3년여 만에 나라와 가계 모두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그런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00조원 정도의 적자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고 또다시 빚잔치에 앞장섰다. 경제부총리 역할을 모른다. 그런 경제부총리에게 대통령은 ‘경제 대단히 잘했고 내년에도 잘해 달라’고 칭찬했다. 야당 대표 시절엔 ‘부채 주도 성장’이라고 전 정권을 두들겨 패던 대통령이다. 홍 부총리는 국회에선 ‘서울 중저가 지역으로 매수 심리 진정세가 주춤한 양상’이라고 했다. 무조건 잘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여론조사는 국민 다수의 의견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다. 지금 정부는 수많은 이념 정책에 ‘다수 여론’을 들이댔다. 심지어 재난지원금 지급 때도 써먹었다. 그렇게 밀어붙인 정책이 실패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세금으로 때려막았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푼도 아니다. 끝까지 돈으로 막아대면 정책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없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실업 대란과 고용 지옥, ‘죽기 일보 직전’이란 자영업자의 아우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따르는 여론과 외면하는 여론이 왜 제각각인지 자초지종이라도 알면 좀 낫겠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어깃장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국민 연설에서 적자 예산의 필요성을 밝혔다. 나랏빚을 져야 하는 이유와 상환 계획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이런 모습을 우리 대통령도 약속했다. 전 정권을 향해 ‘숨 막히는 불통 정권’이라고 퍼부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한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번꼴이다. 야당 비대위원장과는 아직 한 번도 공식 만남이 없다. 그런데도 “협치 노력을 하고 많은 분야에 통합적 정책을 시행했다”고 자찬했다. 나랏돈은 정권의 쌈짓돈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큰 권력도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멋대로 휘두르는데 이해를 구하는 일은 없다. 왜 그런 건지 이유라도 듣자는 게 다수 여론인데도.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