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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의 형용 모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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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형용 모순의 예로 흔히 드는 ‘동그란 네모’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곳곳에 형용 모순이 널렸다. 특히 권력 근처에 많이 등장한다. 애초 형용 모순이란 게 대개 이상에 집착하거나 권력에 취한 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리 총장님”과 “검찰 개혁”이 좋은 예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형용 모순이다. 이런 권력형 형용 모순은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지기 십상이지만 완전히 절망할 일은 아니다. 권력이 바뀌고 국민 저항권이 발동되면 바로잡을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더 파괴적이며 되돌릴 수도 없는 형용 모순이다. 그중 하나가 ‘탈원전과 탄소중립’이다.

탈원전 하면서 탄소중립 달성 #현실 무시, 양립 불가능한 목표 #강행 땐 ‘국가 자살’ 부를 수도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전격 선언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만큼 제거해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의미다.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불가능에 가깝다. 건국 이래 최초·최대의 산업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 한 전문가는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정도의 체질 개선”이라고 표현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30년간 전년 대비 10%씩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9년 처음 온실가스를 전년(2018년) 대비 3.4% 줄였다. 코로나 사태로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올해 감축도 8%에 그칠 전망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은 산업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2017년 배출량 대비 100%를 줄여야 한다. 지난 7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만든 5가지 시나리오(2017년 대비 40~75% 감축) 중 가장 센 75% 감축안보다 25%를 더 줄여야 한다. 75% 안조차 당시 “실현 가능성이 없어 정책 제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와도 협의를 끝낸 사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이 뜬금없이 100% 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탄소를 가장 적게 줄이는 시나리오(40% 감축)를 따른다고 해도 철강·석유화학·시멘트 3개 업종의 전환 비용이 4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100% 감축 비용은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지난 7일 정부가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방법도, 재원 마련 방안도 내놓지 못한 속사정이다.

물론 그래도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탈원전 폐기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87%는 에너지 분야에서 나온다. 에너지 분야의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석탄·LNG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불감당이다. 온 나라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깔아도 안 된다. 태양광과 풍력은 경쟁력도 떨어진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올해 균등화발전원가가 한국의 태양광은 106달러(MWh당), 육상풍력은 105달러로 세계 평균(약 50달러)의 2배가 넘는다.

원전이 현재로선 그나마 유일무이한 대안이다. 영국·일본은 물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 활용 방침을 밝힌 것도 그래서다. 한국 원전은 경쟁력도 탁월하다. 발전원가가 68달러로 영국(230달러)·미국(226달러)보다 월등히 싸다. 건설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요, 탄소 배출은 0에 가깝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탈원전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탈원전 탄소중립이 강행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제조업 붕괴→실업 대란→경제 파탄→국가 존망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75% 감축으로도 제조업 생산이 44% 줄고 고용은 최대 130만 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탈원전 탄소중립’의 형용 모순은 대통령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비현실이다. 나라가 완전히 거덜 나도 될까 말까다. 대통령부터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탈원전이든, 탄소중립이든 하나는 놔줘야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