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선

이낙연 추락, 친문 옷 입은 죄…윤미향 사건때가 진짜 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지난 6월 중순이었다. 국회 의원회관 7층 복도에서 우연히 이낙연(민주당 대표)을 만났다. 그땐 압도적 지지율 1위 주자였다. 이재명(경기지사)과는 차이가 두 배 이상이었다. 친문들이 눈치를 볼 정도였다. 아는 사이긴 하지만 ‘너무 잘 나가는 분’이라 인사하면 가던 길 가겠지 했는데 차 한잔하잔다. 정치인이 큰 결심을 하면 매사 의욕이 넘치고 친절해진다더니 그랬던 것 같다. 8·29 전대를 앞두고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란 말이 돌았고, 정의기억연대 사건으로 윤미향 의원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인 때였다. 그가 한마디 했다.

추·윤 전쟁과 부동산 난국 속 #친문 의식한 강경 노선이 패착 #몸에 안맞는 옷을 입고 안간힘 #합리·중도로 잘하는 것 해내야

“온통 기자들의 관심이 윤미향이야. 그 거취 말이야. 지나가면 기자들이 그것만 묻는다니까. 하지만 거취는 내가 생각한 문제 중 세 번째다. 가장 중요한 건 한·일관계에 대한 걱정이지. (악영향을 줘선 안 되는데) 일본인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 다음으로 NGO의 신뢰 문제가 중요한 거고 세번째가 거취다.”

윤미향 사건을 보는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사건은 진영논리가 거의 다였다. 정의연 기부금 횡령 혐의에 대해 ‘무조건 우리 편이 옳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그는 거기서 한 발짝 벗어나 있었다. 한·일관계란 큰 틀을 생각했지 진영에 쏠리는 그가 아니었다. 그게 그가 가진 색깔이었다. 합리적 중도 성향.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중도 보수’라고도 한다.

그가 요즘 위기다. 40%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이 2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호남에서 이재명에게 뒤질 때도 있다. 여전히 여당 대표지만 ‘이리 급격히 변하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줄어들었다.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거라는 여권 인사들이 한둘 아니다.

이낙연의 추락은 자신을 믿지 못한 것에서 나왔다. 그는 제 색깔을 내기보다 친문의 지지를 얻는 길로 나섰다. 그러려면 강경파가 돼야 했다. 어울리지 않았고 오히려 엉켰다. 윤석열(검찰총장) 잘라내기에 가세해 국정조사를 언급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추미애(법무장관)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논란의 와중에선 ‘호텔식 전월세’ 발언으로 매를 벌었다. 여권의 최대 악재인 추·윤 전쟁과 부동산에서 존재감 없는 어정쩡한 강경파로 남다 보니 화살만 맞는 격이었다. 지지율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도 보였다. 핵심 측근이 옵티머스 사건으로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은 그에게 뼈아픈 악재였다. 그는 페이스북에 “영정 아래서 울음을 누르며 기도만 드렸네”라고 애도하면서 “우리는 함께 일하거나 각자의 생활을 하며 20년을 보냈네”란 글도 적었다. 측근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추측이 나오는데 그냥 애도만 해도 될 것을 ‘각자의 생활’이라고 선을 그은 걸 보곤 뜨악했다.

친문이 이낙연을 당 대표로 밀었을 때 그걸로 한 배를 탄 건 아니었다. 이낙연을 대선 후보로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그를 검증해 보겠다는 거였기 때문이다. ‘마땅찮다’란 분위기가 감지되자 친문 핵심들 사이에서 정세균·이광재·임종석 이름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시 오를 수 있을까. 공수처법 처리를 돌파구 시점으로 보기도 하고,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기면 된다는 얘기도 한다. 희망 사항이자 긍정적 기대일 뿐이다. 이낙연은 제 색깔을 내야 한다. 열성 지지층에 갇히니 확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그의 지지율은 총리 시절 문 대통령의 지지가 그대로 얹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친문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판단뿐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의리가 강경 성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며 레임덕이 올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계승자로 승부를 본다는 건 난감하다. 더구나 지지율이 더 떨어지고 있는 국면에서 말이다. 이낙연의 색깔은 합리적 중도다. 그러면 연일 폭주만 이어지는 여권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추미애를 지지할 게 아니라 자르라고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문 대통령에게 “제 생각은 이러니 이 방향으로 가겠다”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당에서 친문이 후보를 정하는 건 맞다. 하지만 아무리 친문의 입맛에 맞아도 지지율이 낮으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낙연이 그 길로 접어들려 한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둘러쓰고 안간힘을 쓸 게 아니라 합리적 중도 색깔로 ‘잘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친문은 입맛에 안 맞아도 강해진 후보는 마다하지 못한다. 기세등등했던 6개월 전, 윤미향 사건에서 진영논리를 넘어 한·일관계를 생각한 합리적 안목이 이낙연의 경쟁력이다.

신용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