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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병원 70곳에 ‘백신 허브’…군사작전 하듯 접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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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영선 기자, 백신접종 현장을 가다

“실비아와 데이비드 맞죠? 여기에 앉으셔서 잠시만 기다리면 돼요.”

의사·환자·봉사자 한 몸처럼 행동 #쪼개기 예약으로 긴 대기줄 없어

8일 낮 12시(현지시간) 영국 런던 도심에 있는 가이스 앤드 세인트 토머스 재단 병원. 자원봉사자는 80대 노부부를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를 잡은 부부는 “첫날 백신을 맞게 돼 운이 좋다. 큰 영광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병원 1층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허브에는 10여 명이 대기 중이었다. 대부분 보호자의 부축을 받거나 지팡이 등에 의지해 걸음을 떼는 고령자다. 허브 한쪽엔 국민보건서비스(NHS) 로고가 박힌 파란 간이 벽으로 둘러싸인 상담 데스크들이 배치됐다. 주사를 맞기 직전의 고령의 여성 환자가 마스크를 낀 채 의료진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의료진은 1차 접종 후 3주 내에 2차 접종을 해야 하고, 2차 접종 후 7~10일이 지나야 면역이 생긴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가이스병원은 이날부터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백신을 투약하는 런던 7개 병원 중 하나다. 이날 새벽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협상 와중에도 이곳을 찾아 이 병원 첫 접종자인 린 휠러(81)를 격려했다. 가이스병원에 다니는 환자 중 1차 접종 대상자(요양기관 거주자·종사자, 80세 이상 등)를 선별해 통보한 덕에 백신 접종은 혼란 없이 차분히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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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접종 허브인 런던 남쪽 크로이던 대학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영국, 내년 여름 전 5000만명 접종 목표…백신 접종 하루만에 2명 알레르기 반응

백신을 보관하며 접종을 준비해 온 이 병원엔 이른 오전부터 접종하러 온 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병원 정문 앞에서 바닥의 파란 줄을 따라가면 백신 허브가 나왔다. 예약 시간을 세밀하게 나눠 방문자는 한번에 20여 명을 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와 의료진, 환자가 일사불란하게 혼란 없이 ‘세기의 백신 접종 작전’ 수행에 여념이 없었다.

영국 전역에선 이날부터 70개 병원에서 백신 허브가 가동됐다. 화이자 백신 1차분인 80만 도즈(40만 명이 각 2회씩 투여)를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집단에 우선 접종한다. 영국 보건 당국의 목표는 야심 차다. 16세 이상 영국 성인 인구 거의 전원(약 5000만 명)에게 백신을 접종해 내년 여름 전 코로나19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 일정이다.

화이자 백신 접종 시작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의미 있는 전환점인 것은 확실하지만, 연쇄 접종이 승리로 끝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높다.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 이하로 보관해야 하고 녹인 뒤 보관 기간이 짧아(5일) 여러 곳에서 분산 접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백신의 승인과 접종 시기도 변수다.

백신을 맞은 뒤 면역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도 현재로는 미지수다. 백신 접종자가 미접종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지도 앞으로 살펴야 한다. 영국 정부 수석 과학 고문 패트릭 발란스는 텔레그래프에 “내년 겨울에도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신만 믿고 사회적 긴장을 풀면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는 데다 백신 접종자가 바이러스를 여전히 갖고 있어 비접종자를 감염시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2명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영국 정부가 과거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백신 접종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스카이뉴스가 9일 보도했다.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낸 2명은 평소 알레르기 반응이 심각해 아드레날린 주사기를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화이자 대변인은 “알레르기 반응 원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조사하겠다”며 현재까지 3상 임상 대상자 4만4000명 중 4만2000여 명이 2회 접종을 모두 마쳤지만 심각한 안전 우려는 제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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