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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 방한' 나선 美 비건 “北협상, 타결 직전 무너져 좌절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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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년 반은 기존 규범과 예측 가능한 행동을 뛰어넘으려 한 시간이었다.”

9일 이도훈 본부장과 회담서 소회 밝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9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털어놓은 소회다.

'고별 방한'에 나선 비건 부장관은 “내가 공직을 시작하며 (첫 출장으로) 왔던 한국에 부장관으로서 마지막 방문을 하게 돼 기쁘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내가 일했던 지난 2년 반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였다며 “기존 규범과 과거의 예측가능한 행동을 뛰어넘으려는 지도자들의 의지에 관한 것으로, 정상급 레벨의 관여를 통해 새롭고 담대한 비전을 진전시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또 “이는 70년을 나란히 걸어온 미국과 한국이라는 우리 두 동맹의 이야기이자, 당신(이 본부장)과 나의 우정의 이야기”라고도 했다. 한미 북핵수석대표로 각별한 친분을 쌓아온 이 본부장에겐 “매 단계마다 당신을 신뢰해왔다”고 고별인사를 전했다.

비건 부장관은 이어 "대북특별대표로 있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크나큰 애정과 따뜻한 마음이 생긴다"며 “숱한 한밤중의 통화들, 전세계를 돌았던 출장, (협상이) 돌파구 직전까지 갔던 성공의 순간과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눈앞에서 무너져 다시 쌓아 올려야만 했던 좌절의 순간들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도훈 본부장도 비건 부장관에 앞서 “돌이켜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면서도 “우리는 한반도 문제는 반드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것, 한·미가 빈틈없는 조율을 한다는 두 가지 핵심 원칙을 지켜왔다”고 평가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21일 오후(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숙소인 오텔 뒤 파르크 하노이 호텔에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의제조율 첫 협상을 마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주 베트남 미대사관 방문 후 숙소로 돌아오고 있다. [뉴시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21일 오후(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숙소인 오텔 뒤 파르크 하노이 호텔에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의제조율 첫 협상을 마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주 베트남 미대사관 방문 후 숙소로 돌아오고 있다. [뉴시스]

비건 부장관은 2018년 9월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돼 스웨덴 스톡홀름 남·북·미 실무협상(2019년 1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019년 2월)과 판문점 깜짝 회동(2019년 6월), 스웨덴 2차 실무협상(2019년 10월) 등 북미협상의 주요 장면을 총괄했다.

그사이 북측 카운터파트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김혁철 대미특별대표→김명길 대미특별대표로 세 차례 바뀌었다. 하지만 이후 협상은 매번 결렬됐고 비건 부장관은 역대 북핵 수석대표들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성과를 손에 쥐지 못 한 채 임기를 마치게 됐다. 이날 그의 발언에도 진한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방한 일정 첫날인 이날 회담에선 비건 부장관의 '고별 방한'에 걸맞은 덕담들이 오고 갔다. 오전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과 진행한 차관회담에선 “이번이 마지막 방한은 아닐 것”이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비난 담화를 내고, 미 재무부는 북한 석탄 밀수출에 연루된 기업들을 추가 제재하고 나서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한 상황이다. 비건 부장관은 이에 대한 취재진 질의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비건 부장관은 오는 10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방한을 마무리하는 강연을 할 예정이다. 이날 북한을 향한 ‘고별 메시지’도 나올지 관심사다.

정효식·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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