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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지옥의 묵시록'에나 나올 헬기로 4년 더 훈련할 판

중앙일보

입력

도입한 지 40년이 넘은 육ㆍ해군의 기초 비행훈련용 헬기를 대체하기 위한 후속기 도입 사업(TH-X)이 재개된다.

"해군, 부속 구하러 육군 퇴역 UH-1H 들여와" #지난해 4월엔 꼬리날개 고장으로 비상착륙 #방사청, 예산 증액 요구했지만 퇴짜 맞아 #"3차서도 유찰되면 도입 지연 장기화 걱정"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이르면 9일쯤 TH-X 도입 사업의 3차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총 사업비는 약 1742억원으로, 내년 중으로 계약해 2024년까지 40여대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베트남전을 다룬 〈지옥의 묵시록〉(1979년작)과 같은 고전 영화에서나 볼 법한 현 기종들은 사고 위험성이나 수리부속 수급 문제 등 노후화가 심각하다. 갓 임관한 초임 조종사들이 타는 훈련기인 데다가 노후화까지 겹쳐 불안한 비행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UH-1, OH-6 등으로 구성된 미군 헬기 부대가 베트콩 마을을 공습하는 장면. 대한항공은 OH-6에서 발전한 500MD 기종을 1976년부터 면허생산해 군에 납품했다. [사진 파라마운트]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UH-1, OH-6 등으로 구성된 미군 헬기 부대가 베트콩 마을을 공습하는 장면. 대한항공은 OH-6에서 발전한 500MD 기종을 1976년부터 면허생산해 군에 납품했다. [사진 파라마운트]

이에 따른 각 군의 요청으로 방사청이 지난 2015년부터 국외구매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앞선 두 차례 입찰에선 가격 문제 등으로 도입에 실패했다.

방사청은 유찰 가능성 때문에 3차 입찰을 앞두고 총 사업비를 약 2022억원으로 현실화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기존 사업비로는 시뮬레이터와 수리 부속 등을 제외하면 대당 35억원 선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1ㆍ2차 입찰 당시 업체들이 제시한 도입가는 대당 40억 원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기존과 동일하게 예산 1742억원을 배정했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예산에 발목이 잡혀서 또다시 유찰된다면 사업방식 자체를 원점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선행연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만큼 후속기 도입 시기가 대폭 늦춰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지난해 11월 7일 해군의 기초 비행훈련 헬기인 알루에트(ALT)-Ⅲ가 마지막 교육훈련비행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해군]

지난해 11월 7일 해군의 기초 비행훈련 헬기인 알루에트(ALT)-Ⅲ가 마지막 교육훈련비행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해군]

이와 관련, 한 군 관계자는 “당초 2019년까지 도입하겠다던 계획이 5년이나 지연된 것인데 더는 늦출 수는 없다”면서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현장 상황은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해군에선 비행 중이던 훈련기가 꼬리날개 고장으로 비상착륙하는 등 기체 노후화로 인한 사고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해군은 수리 부속 확보조차도 큰 애를 먹고 있다. 이 때문에 해군은 지난해 말 훈련기를 알루에트(ALT)-Ⅲ에서 UH-1H로 전면 교체했다.

UH-1H의 경우 육군에선 올해 모두 퇴역시킨 기종이지만, 그나마 수리 부속 확보가 용이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군 소식통은 “수리 부속이라도 돌려막기로 쓸 수 있다는 이유로 훈련기를 교체했다”며 “그래도 없는 부속이 많아서 육군에서 4대를 더 들여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27일 경기도 용인의 17항공단 203항공대대에서 열린 UH-1H 퇴역식 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68년 도입한 UH-1H는 52년만에 육군에서 모두 퇴역했지만, 해군은 그나마 수리부속 사정이 낫다는 이유로 지난해 말부터 기초 비행훈련용 헬기로 쓰기 시작했다. [사진 육군]

지난 7월 27일 경기도 용인의 17항공단 203항공대대에서 열린 UH-1H 퇴역식 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68년 도입한 UH-1H는 52년만에 육군에서 모두 퇴역했지만, 해군은 그나마 수리부속 사정이 낫다는 이유로 지난해 말부터 기초 비행훈련용 헬기로 쓰기 시작했다. [사진 육군]

워낙 노후 기종이다 보니 계기판ㆍ전자장비 등이 너무 아날로그여서 조종사 양성에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군 고위 관계자는 “육군의 500MD 훈련기로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전술 비행 감각을 익히는 데 한계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UH-1H가 도태된 상황이어서 (소형기인 500MD로는) 훈련 공백을 메우기가 어려워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쯤 되자 군은 더는 사업을 늦출 수 없다고 보고 3차 입찰에서 작전요구성능(ROC) 평가 기준까지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에 4인이었던 탑승 인원을 3인으로 바꾸고, 온도ㆍ체공시간 등의 조건도 하향 조정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요구성능이 낮아지면 업체 입장에선 당연히 더 싼 기종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며 “군이 다급한 나머지 훈련에 적합한 기종보다 노후기 대체에 방점을 두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맞춰준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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