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호근 칼럼

최종병기, 사약을 받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0.12.07 00:51

업데이트 2020.12.07 01:49

지면보기

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그가 오던 날, 대통령의 애정 어린 미소를 기억한다. 그가 오던 날, 검찰개혁의 오랜 꿈이 이뤄진다던 민주당 의원들의 환호성을 기억한다. 선거법, 공수처법, 정부예산안을 두고 6개월을 허비하지 않았던가. 국회 문턱을 못 넘은 법안들은 대체로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으로 돌파하던 차였다. 마침 21대 총선이 천금 같은 출구를 뚫어줬다. 여기에 적폐청산을 진두지휘할 장수를 모셨으니 ‘20년 집권’ 같은 당찬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검찰개혁 격투기로 아수라장 한국
추장관 언행이 개혁명분 까먹어
윤총장 칼을 받아야 후한 없는데
국민의 최종병기에 사약 내릴까

그런데 정권의 기대는 한 달도 못 갔다. 총장의 칼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눈치가 없었거나, 여권이 비난하듯 정치적 욕망을 은연중 드러냈을지 모른다. 총장이 대권 주자로 직행할 수 있을까? 글쎄다. 아무튼, 좌충우돌했던 것은 분명하다. 윤 총장이 시키지 않은 일, 위험한 일에 나설 줄 예상하지 못했다. 청와대에 들이닥친 수사팀을 보고 대통령은 대노(大怒)했을 것이고, 여권실세들은 기가 찼을 것이다. 검찰개혁에 차질이 빚어졌음을 직감했다. 정권의 기대는 우려에서 적의(敵意)로 바뀌었다. 조직은 이미 친문(親文) 검사들로 장악된 상태지만, 다급해진 정권은 총장의 척후대를 해체하고 손발을 잘랐다. 고립무원 총장의 독전(獨戰)이 시작됐다. 국민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든 법문(法門) 전쟁이 일 년 넘게 극성을 부릴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대한민국의 창의적 시간은 ‘검찰개혁’ 격투기로 아수라장이 됐다.

언론, 재벌, 검찰개혁이 현 정권의 3대 숙원사업이다. 개혁은 필요한데 적정선은 어디까지? ‘장악’일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무소불위의 비대한 권한을 휘두르는 검찰’이 특히 그렇다(문재인, 『대한민국이 묻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 수사권의 경찰 이양과 친문 검사의 전진배치는 완료됐다. 공수처는 곧 출범 예정이다.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는 마당에 조국사태, 금융사기사건, 선거개입사건이 터졌다. 그냥 지나쳤으면 좋았을 텐데 검찰의 본능을 자제하지 못했다. 매를 사서 맞는 윤 총장은 지극히 눈치가 없거나 비정치적인 인물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자신의 정치’를 한다고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추 장관의 말발이 서겠는가? 장관의 하명을 따르면 정치가 아니다? ‘성역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당부를 충실히 따르면 정치인가, 아닌가? 따르면 정권의 충견, 안 따르면 ‘너의 정치’로 비난받는 운명이 검찰이다.

검찰개혁의 화려한 명분을 대체로 까먹은 사람은 추 장관이다. 아들 병영이탈 의혹을 모성(母性)으로 틀어막았고, 야당의 공세를 비웃음으로 받아쳤다. 추 장관에 대한 공세는 어쩌면 부당하겠으나 행동은 밉상이고 말마다 정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언행이 그러니 개혁명분이 살아나겠는가? 개혁은 우선 환심(歡心)을 사야 한다. 논리가 정연한 것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점잖게 ‘법학개론’ 1장을 읊조렸겠는가?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몰각(沒却)한 조치! 총장은 장관을 맹종(盲從)해서는 안 된다! 몰각, 맹종 같은 통렬한 표현이 판결문에 등장했다. 후배 판사로부터 저런 핀잔을 들은 장관은 잠시라도 조신하는 게 상식적이다. 추 장관은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즉시 항고를 감행했다. 부하가 항명하는 법원을 먼저 개혁해야 할 판이다.

정권 호위대가 불어대는 호각소리도 정떨어지는 건 비슷하다. ‘징계혐의자’, ‘검찰 기득권자’라는 비방도 그렇지만 ‘임기제 뒤에 숨어 선출된 권력을 흔들고 있다’(이원욱 의원)는 힐난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총장의 뚝심에 선출권력이 진정 흔들리는가? 오점 없는 권력이 어디 있으랴만, 그의 칼을 조금만 받았더라면 오히려 후한(後恨)이 없을 터였다. 윤 총장은 정권의 달갑잖은 구세주일 수 있었다. ‘흠결제로’ 정권의 흠결이 쌓이면 과거 정권의 비극을 재발하는 불씨가 되고야 만다.

작년 6월, 그가 총장에 임명됐을 때 필자는 ‘적폐청산의 최종병기가 왔다’고 썼다(중앙일보 2019년 6월 24일자 31면). 정권과 검찰, 통치와 법치 사이에 거리두기가 가능할지를 물었다. 동상이몽은 정작 총장에겐 엄청난 모험이다. 광장 주권을 독차지한 정권이 적폐청산의 칼질을 완수하라고 보검을 쥐여 줬다. 그때 과연 중종 초기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의 운명을 피해 갈 수 있을까를 물었다. 조광조는 반정공신 76명을 쫓아냈고, 중종의 첫 부인 단경왕후를 폐위했다. 그는 결국 유배지 전라도 화순에서 중종의 사약을 받았다.

관련기사

최종병기, 윤 총장은 사약을 받을까? 정권의 압박에 몰리고 몰린 덕에 그는 은연중 헌법과 공익적 명분에 충성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상징이 됐다. 윤 총장은 검찰개혁을 저지하는 역적인가, 아니면 민주독재를 막는 국민의 최종병기인가? 민주국가가 독재로 기우는 ‘포퓰리즘 매뉴얼 11단계’(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에서 착착 진행되고 있다. 10일 예정된 징계위가 ‘사법권 장악’이란 가장 힘든 과제를 풀어낼 것이다. 언론과 재벌이 남았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