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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김현미가 종범이면 변창흠은 주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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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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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장관’은 결국 짐을 싼다. ‘마리 빵뚜아네트’라고 조롱을 받았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실상 경질됐다. 그 자리에는 더 쎈 사람이 온다. 후임 장관으로 내정된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사단’의 일원이다.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에 변화는커녕 오히려 더 세게 조이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변창흠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이론가요 뒷배였다”며 “김현미가 종범이라면 변창흠은 주범 격”이라고 꼬집은 이유다. 국민의당은 “비구름(김현미)이 지나가니 우박(변창흠)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는 논평을 내놨다.

‘부동산 사령탑’ 국토부 장관 교체 #‘빵 장관’ 가고 더 ‘쎈’ 사람 온다 #규제 일변도 정책 강화 신호 읽혀

세종대 교수 출신의 변 후보자는 세입자 보호의 소신이 강한 인물이다. 주거기본법에 규정한 주거권 조항을 즐겨 인용한다.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는 선언(주거기본법 2조)이다. 듣기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말이다. 문제는 주거권 실현을 위한 방법이다. 좋은 의도를 내세운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억지로 밀어붙인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의 부작용이 대표적인 예다. 임대차 기간을 기존의 2년에서 ‘2년+2년’으로 고쳤으니 전세난이 해소됐을까. 시장에선 신규 전셋집의 ‘씨’가 마르면서 전셋값은 치솟았다. 신규 전셋집을 찾는 세입자도, 집주인도 모두 임대차법에 불만이다. 기존 세입자는 2년 더 살 수 있으니 일시적으로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새로 전셋집을 구할 때는 하늘 같이 치솟은 전셋값에 한숨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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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변 후보자의 소신은 한술 더 뜬다. 임대차 기간을 ‘3년+3년’ 또는 ‘2년+2년+2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대차법 규제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자는 얘기다. 교수 시절인 2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그는 “임차인에게 최소 6년을 안정적으로 살게 해줘야 한다”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3년+3년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전 얘기라고 흘려보내기에는 왠지 불안하다. 변 후보자의 말대로 임대차 기간을 3년+3년으로 하는 법안이 이미 국회에 올라가 있어서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초 발의한 법안이다. 여당 사무총장(박광온)과 신임 국토부 장관이 뜻을 합치면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주택공급 문제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김현미 장관의 말에 많은 사람이 비웃었다. 한편으로 반가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주택공급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서다. 그런데 변 후보자의 성향은 다르다. 일부 언론에선 그를 ‘주택공급 전문가’라고 평했는데, 황당한 얘기다.

지난 9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변 후보자는 “서울의 주택공급은 부족하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다. 2년 전 월간 『도시문제』에 쓴 글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는 “서울의 주택가격 폭등은 주택 공급량 부족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십만 명을 거느린 온라인 사이트나 각종 강좌나 동호회 등”이 “부동산 가격을 띄우는 거대한 네트워크”라고 덧붙였다. 집값 상승은 주택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투기세력 때문이라는 게 변 후보자의 소신이다. 그러니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주택공급을 늘리는 게 아니라 투기세력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신의 저서(『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공급부족론의 미혹에 빠져 있었다”고 쓴 것과 일맥상통한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는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재개발·재건축이 부동산 투자개발 사업이라는 인식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옛 도시빈민연구소) 이사를 맡은 변 후보자는 오랫동안 “세입자를 쫓아내는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은 안 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대신 그가 공급하고 싶어하는 것은 임대주택이다. 임대주택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당장 주택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회의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 반이 지났다. 남은 1년 반도 전 정권 탓이나 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 것인가. 부동산 정책 사령탑인 국토부 장관의 교체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지난 3년 반의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는 건 제발 보고 싶지 않다.

주정완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