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종료 사흘을 앞둔 5일 밤 페이스북에 짧은 결의를 남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출범한다. 6일까지 여야가 공수처장 후보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안 됐을 경우 다음 주 정기국회 회기 내에 추천 요건을 변경하는 법 개정을 하겠다.”
김 원내대표는 “많은 분들께서 공수처 때문에 문자를 보내주고 계신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이렇게 썼다. 그는 지난 3일 공수처법 등 쟁점 법안 처리 시기를 9일로 못 박았다.
이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일 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인 법 개정으로 나간다면 국민과 함께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야당의 동의 없이 함부로 (공수처장을) 임명하지 말라는 게 공수처법의 취지다. 민주당이 자기들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겠다며 무리하게 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민적 저항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민주당(174석)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가능한 의석 구조 탓에, 국민의힘(103석)이 동원할 수 있는 저지 수단은 거의 없다.
민주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여야관계가 파탄날 게 뻔하지만 민주당도 머뭇거릴 형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 국회이기 때문에 이번에 쟁점법안을 처리못하면 영영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초조함이 있다. 당 홈페이지 권리당원 게시판엔 “몸을 던져서라도, 박병석(국회의장)의 멱살을 잡아 직(職)을 잃더라도, 공수처를 반드시 출범시켜야 한다”, “지금 합의하는 거 보자고 어금니 물고 기다린 거 아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최대한 합의를 끌어내면 좋겠지만, 야당이 계속 반대하면 지난 7월 부동산 관련 법안을 처리할 때와 비슷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 7월 28일 하루 반나절 사이에 종합부동산세법·지방세법·임대차3법 등 부동산 관련 13개 법안을 상정해 민주당만의 기립 표결로 처리한 전례가 있다. 당내 30·40대 초선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법은 물론 세월호 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 활동 기한을 연장하는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는 협상 틀에 갇혀 국민만 기다리게 했다. 이제 결행을 통해 성과를 보여야 할 때”(김용민 의원)라고 주장했다.
한정애 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노조관계법·고용보험법·산재보상보험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경찰법·국가정보원법·지방자치법 등을 공수처법과 함께 열거하며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 9일, 꼭 처리하겠다”고 적었다. 이낙연 당 대표가 당론으로 지정한 5·18특별법 개정안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단 야당의 우려를 반영해 남은 기간 협의를 통해 보완한단 입장이지만, 법안 처리의 데드라인은 바꾸지 않았다.
다만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추미애·윤석열 사태’로 당 지지율이 하락세인게 변수다. 강행 처리로 독단·오만이란 비난을 뒤집어 쓸 경우 자칫 정권 레임덕을 가속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지난 7월 부동산 관련 법안 강행 처리 후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이 때문에 한 민주당 관계자는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를 위해 12월 임시국회가 불가피한 만큼 9일 일괄 처리해야 한다는 조급증을 버릴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더라도 모조리 일괄 처리 하는 것보단 단계별로 통과시키는 게 낫다는 취지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