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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성 비슷해 세율도 비슷해야”vs“KT&G 등 대형업체 배만 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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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재정소위에선 지난달 액상형 전자담배의 세율 인상을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국민의힘 간 격론이 벌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일반 담배의 절반 가량인 액상담배의 세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국민의힘은 세율 인상의 근거가 부정확하다며 반대했다. 뉴스1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재정소위에선 지난달 액상형 전자담배의 세율 인상을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국민의힘 간 격론이 벌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일반 담배의 절반 가량인 액상담배의 세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국민의힘은 세율 인상의 근거가 부정확하다며 반대했다. 뉴스1

“액상형 전자담배가 유해하지 않다면 정부도 세율 인상을 할 이유가 없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액상형 전자담배는 타르가 없어 발암물질이 현저히 적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유해성’이 어떤 상품에 대한 세금(개별소비세)을 매기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지난달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선 기획재정부와 국민의힘 사이에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지난 9월 22일 국무회의가 의결한 지방세법 개정안 토론 과정에서다. 이 법안은 액상담배에 붙는 세금을 현 1670원(0.7㎖ 기준)에서 3000원 안팎으로 약 두 배 가량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재부는 “담배는 (인체) 유해성이라는 외부불경제를 창출하기 때문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해야 한다”(임재현 세제실장)는 입장을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유해성을 세율 조정의 근거로 새로 도입한다는 것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조해진 의원)고 맞섰다.

"유해한 만큼 과세해야" vs "유해성은 과세 기준 아냐" 

담배 종류별 부과 세금.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담배 종류별 부과 세금.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기재부가 내세운 세율 인상의 근거는 과세 형평성과 유해성이었다. 액상담배의 세율이 일반 담배(3323원)나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3004원)의 절반 수준이라 인상이 불가피하고 액상담배의 유해성도 궐련형 전자담배에 못지 않아 세율을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 실장은 “현재 궐련 1갑이 니코틴 용액 1.6㎖와 (유해성이) 같다는 전제 하에 세율이 정해져 있다. 식약처 분석 결과 니코틴 0.8㎖만 있어도 궐련 1갑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유해성 걱정은 보건복지부가 하고 정책을 통해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조세 당국에서 유해성을 근거로 세금을 정한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액상담배에 대한 유해성 평가도 일률적이지 않고 논란이 분분해 특정기관(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결론만으로 나머지 주장은 다 배척하는 것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文 "왜 조치 않나" 질책 후 '사용 자제' 권고 

액상형 전자담배 '쥴'은 지난해 5월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액상담배의 유해성을 근거로 사용 자제 권고를 내렸고, 결국 줄은 지난 지난 5월 국내 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

액상형 전자담배 '쥴'은 지난해 5월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액상담배의 유해성을 근거로 사용 자제 권고를 내렸고, 결국 줄은 지난 지난 5월 국내 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

액상담배 제재에 관한 논의는 지난해 5월 쥴(JUUL)이 상륙하면서 본격화했다. 기재부와 행정안전부는 액상담배에 대한 세율 인상 방안을 논의했고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액상담배에서 폐 손상 의심 물질인 비타민E 아세테이트 등이 검출됐다며 사용 자제 권고를 내렸다. 미국에서 쥴 사용에 따른 것으로 의심되는 폐 질환자가 잇따르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관련부처에 “왜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해 정부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냐”고 지적했다. 결국 쥴은 지난 5월 진출 1년만에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액상담배 자체를 퇴출시키려 유해성을 부풀렸다는 주장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비타민E 아세테이트는 인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수준의 극미량이 검출된 것일 뿐이고, 이마저도 표본 집계의 오류로 인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김도환 전자담배총연합회 대변인은 “비타민E 아세테이트는 유해성 평가 대상 112개의 제품 중 3개에서 극미량 발견됐고 지난 10월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며 “검증된 액상담배의 경우 연초는 물론 궐련형 전자담배보다 훨씬 유해성이 덜하다는 조사결과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반담배와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비교 연구 결과.

일반담배와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비교 연구 결과.

실제 지난해 지난 6월 화학연구원의 유해성분 분석결과에 따르면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보다 포름알데히드는 332분의 1, 아세트알데히드는 2만1425분의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윤희숙 의원은 지난달 20일 기재위 회의에서 “액상담배의 세율을 높이는 것은 오히려 유해성을 세율에 반영하겠다는 기재부의 방침에 반대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무산된 액상담배 세율 인상 

결국 국회 기재위 재정소위는 지난 30일 액상담배 세율 인상 관련 법안을 이번 정기 국회에선 처리하지 않기로 결론냈다. 이 회의에서도 기재부와 국민의힘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렸다. 기재위는 법안 계류를 결정하면서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과 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조 의원은 “개별소비세 인상의 근거가 유해성이라면 당연히 그 유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며 “식약처 등 관련 기관 3~4곳에서 추가 조사를 해 객관적 데이터를 뽑거나, 아예 관련 기관 여러 곳이 합동으로 유해성 검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담배 종류별 판매량 변화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담배 종류별 판매량 변화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담배업계에선 액상담배에 대한 세율 인상 시도가 KT&G가 벌인 입법 로비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액상담배의 세율이 인상될 경우 이용자들은 그 대체재에 해당하는 궐련형 전자담배나 일반 담배로 갈아타게 될 텐데, 이 경우 KT&G의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이 더욱 높아질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조 의원은 지난 10월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세율을 책정할 때부터 정부가 KT&G 의견만 듣고 올린 탓에 액상담배 종사자들은 생계위기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5월 ‘쥴’이 출시된 이후 430만 포드(pod)까지 증가하던 액상담배 월간 판매량은 지난 6월 10만 포드로 줄었는데, 같은 기간 일반 담배 판매량은 2억6790만갑에서 2억7690만갑으로 약 900만 갑 늘었다. 이와 관련 대형 담배업체 관계자 B씨는 “액상담배를 피우던 사람의 경우 대체재로 궐련형 전자담배가 아닌 일반 담배를 찾는 경우가 훨씬 많다. 궐련형 전자담배에선 담배 흡입 시의 타격감 등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액상담배 세율을 높이면 반사적으로 담배 중 세율이 가장 높은 일반 담배의 판매가 늘어 KT&G는 매출이 정부는 세수가 느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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