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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레슨, 비대면 합주…‘랜선 앙상블’ 감동 백 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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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오케스트라’ 10주년 기념 공연. 55개 패널에 영상으로 등장한 전국의 아이들과 무대 위 지휘자가 ‘온택트’로 만나 연주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꿈의 오케스트라’ 10주년 기념 공연. 55개 패널에 영상으로 등장한 전국의 아이들과 무대 위 지휘자가 ‘온택트’로 만나 연주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공주, 오산, 강릉, 대구에서 차례로 악기를 들고 나타난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무대를 채운다. 하지만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지휘자 한 명뿐. 학생들은 사람 키만 한 LED 패널 55개를 통해 지휘자와 ‘온택트’로 만났다. 지난달 1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꿈의 오케스트라’ 10주년 기념 공연 ‘아이 콘택트(I CONTACT)’ 현장 모습이다.

진화하는 온라인 예술교육 #지방 학생들·예술의전당 지휘자 #LED 패널 55개 통해 합주 성공 #비대면 콘텐트·플랫폼 속속 개발 #디지털 환경이 창의적 영감 자극 #참가자 “문 닫혔지만 창문 열렸다”

사실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모델 삼아 2010년 시작된 ‘꿈의 오케스트라’는 49개 거점 2800여 단원들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사업이다. 매년 음악캠프를 열고 동고동락하며 하나의 무대를 완성해 왔는데, 올해는 모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는 대신 ‘온라인 캠프’를 열었다. 전국 18개 거점기관 250여 명의 단원은 3개월간 ‘비대면’ 레슨을 받으며 합을 맞췄고, 사전녹화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영상으로 모여든 아이들은 처음엔 반딧불로, 다시 어벤저스의 방패가 되어 시간의 문을 통과해 무대에 나타났다. 코로나19라는 장벽을 뚫고 이뤄낸 앙상블은 ‘엘 시스테마’ 못잖은 울림을 줬다. 가수 헨리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비롯한 3곡은 사전에 녹화한 영상을 무대 위에서 합쳤다.

유례없는 실시간 비대면 연주 성공

연주 전 무대 위에 패널만 설치된 모습. [사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연주 전 무대 위에 패널만 설치된 모습. [사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하이라이트는 ‘실시간 비대면’으로 연주한 엔딩 곡 ‘찬란한 꿈의 조각들’이었다. 조수현 총감독은 “실시간 합주를 5G 기술 없이 현재의 기술력으로 실현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전송되는 영상의 속도를 조절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차례 리허설 끝에 무대에서 아이들의 음원을 원형대로 살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벅찬 감동을 전했다.

비대면 시대를 맞아 예술교육도 진화하고 있다. 학교가 문을 닫자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곳은 예술계열 교육이었다. 일반 교과목은 비교적 온라인 강의가 쉽고 인프라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면대면 교육을 필수로 여겨온 예술교육 분야는 온라인을 터부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꿈의 오케스트라’처럼 비대면의 진가를 보여주는 기획들이 주목받고 있다.

초중고 문화예술교육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전국에 예술 강사를 파견해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앞장섰다. 4월부터 시작한 ‘어디서든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은 온라인 교육 콘텐트 아이디어를 모은 것으로, 이중 ‘숨은 표정 찾기’ ‘바닥의 반란’ ‘꽁꽁꽁 빙하시대의 놀이’ 등 일상 속 물건을 재료 삼아 다양한 감각으로 연결 짓는 창의적인 콘텐트가 우수 아이템으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 포털과 아르떼 라이브러리, 유튜브 등을 통해 대국민 서비스되고 있다.

사실 각자 온라인 수업 콘텐트를 만들어야 하는 예술 강사들의 크리에이터 변신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르떼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비대면 교육 인력 연수프로그램부터 온라인으로 습득해야 하고, 영상 제작 장비를 마련해 편집 기술도 배워야 한다. 기존에 자잘한 소품을 만들던 연극 강사가 인형극 영상 수업을 위해 첨단 크로마키 촬영 기법을 구사해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의미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유튜브에 ‘예술 강사의 온라인수업 고군분투기’를 올린 하태웅 강사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교육 커리큘럼과 콘텐트를 영상으로 축적할 수 있었다”고 했고, 시각예술 분야 예정원 강사는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니 하나의 주제로 전혀 다른 결과물들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고, 비대면인 만큼 더 참여자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이끌어내는 소통 방식을 찾게 됐다”고 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김자현 교육기반본부장은 “면대면 방식 수업 실행에 40분이 필요하다면 20분짜리 온라인 교육 콘텐트 제작에는 4~5시간이 걸리지만, 강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학습자의 수요와 관심, 요구에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강사들, 크리에이터 변신 분투

지난 9월 한국이 주최한 ITAC 개막식.

지난 9월 한국이 주최한 ITAC 개막식.

비대면 예술교육 콘텐트와 플랫폼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이 유튜브에 공개한 이러닝 강의 ‘무대셋업의 모든 것’은 10월 초연된 뮤지컬 ‘광주’와 협업한 총 20편 분량의 현장 실무 교육 콘텐트다. 1993년부터 운영해온 ‘무대예술 전문교육’의 일환으로, 올해 대면 현장 교육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오프라인의 현장성과 실용성을 구현하기 위해 최신 뮤지컬의 실제 셋업 과정을 전부 영상에 담았다. 무대 셋업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한 것은 세계 최초다.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홍승욱 원장은 “뮤지컬 ‘광주’팀의 협조로 전문 무대예술을 꿈꾸는 모든 사람을 위한 생생한 온라인 교육콘텐트가 탄생했다. 앞으로 다른 장르 공연 현장에 대한 교육콘텐트 제작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간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론칭한 원더월 클래스는 아티스트들의 노하우와 숨겨진 작업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와 피아니스트 지용의 연주 클래스를 비롯해 배우 하정우와 진구의 연기 클래스, 힙합씬에서 핫한 기리보이의 랩 클래스 등 온갖 분야 아티스트들의 노하우를 공개해 누적 방문자 1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지난 9월 한국이 주최한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에서도 비대면 교육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ITAC는 전세계 예술교육가들이 예술교육의 실천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국제교류의 장으로, 올해 처음 디지털 컨퍼런스를 시도했다. 온라인 플랫폼에 1800여 명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 원활한 상호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디지털 환경이 창의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온라인으로 만나니 오히려 참여가 활발해지는 장점이 있었다” “문은 닫혔지만 창문이 열렸구나 싶다” 등의 소감을 전했다.

“이모티콘 댓글 등 온라인서 되레 적극 소통”

김자현 본부장

김자현 본부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상반기부터 예술교육 비대면 방식 전환을 추진해 6월부터 강사 교육과 영상 콘텐트 배포를 시작했고, 9월부터 온라인 강의를 본격 운영해 다양한 결과물을 내고 있다. ‘꿈의 오케스트라’ 10주년 기념 공연도 그중 하나다. 김자현 교육기반본부장은 “대면교육과 다르지만 의미 있는 결과들이 나오면서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비대면 교육에 소통의 문제는 없나.
“ITAC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오히려 다양한 방식의 피드백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면대면 상황에서 소극적인 학습자들도 온라인상에서는 실시간 댓글과 심지어 이모티콘으로도 소통을 시도하더라. 이제는 단순히 가르쳐야하는 것에 대한 목록이 아니라, 학습자 중심의 배움의 환경을 구축하고 소통 방식을 설계하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비대면 교육이 우월한 면이라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 도서벽지산간지역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서로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과 해석이 활발해지니 과정 중심의 교육을 실행하기도 쉽다.”
전문적인 예술교육도 가능할까.
“미래의 예술교육은 상상하지 못했던 장르가 될 거다. 예술교육가들의 연령별 디지털 리터러시의 격차를 인정하고 전문 인력의 역량 전환이나 성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모든 교육가가 비대면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온라인상에서 예술교육의 본질을 더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테크닉 전달보다 내적 동기를 높이기 위한 긍정적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해결이 시급한 과제라면.
“저작권이 해결된 다양한 교육자원을 제공하는 간접적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학습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교육자에게 네트워크를 지원해 지식창출과 경험이 공유될 수 있는 공공 문화예술교육 플랫폼도 준비해야 한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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