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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끈 휴대전화 갖고만 있어도 시험 무효…판결로 보는 수능 주의점

중앙일보

입력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11월 30일 오전 부산진구 부산진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시험 당일 발열 등 유증상 학생들을 위한 별도시험실을 점검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11월 30일 오전 부산진구 부산진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시험 당일 발열 등 유증상 학생들을 위한 별도시험실을 점검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주 연기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3일 일제히 치러진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 수능’으로 불리는 만큼 학생들이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점들을 알아봤다.

모든 전자기기 시험장 반입은 금지

휴대전화를 비롯해 고교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 전자사전, 스마트워치, 전자계산기 등 전자기기는 어떤 종류든지 시험장에 갖고 가면 안 된다. 불가피하게 시험장에 갖고 왔다면 1교시 시작 전 감독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실수로 소지했더라도 부정행위로 간주한다.

실제로 2016년 11월 치러진 수능에서 감독관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고 가방에 넣어 둔 채 응시한 학생이 시험 무효 처분을 받았다. 당시 4교시 시험 시작 후 작은 진동 소리가 들렸고, 감독관은 5교시까지의 시험이 모두 끝난 후 금속탐지기로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전원은 꺼진 상태였고, 와이파이나 데이터 통신망 이용도 불가능한 기종이었다. 학생은 “가방에 들어있는 점을 몰랐고, 전화기도 꺼져 있었다”며 “대학입학이 늦어지는 등 시험 무효 처분으로 받는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시험장에 휴대전화를 반입해서는 안 되고, 감독관에게 제출하지 않으면 부정행위가 되어 어떤 제재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시험 전에 이미 충분히 공지됐다”며 학생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독관 지시에 협조 안 해도 부정행위

2020학년도 수능 수학영역 시험지. [연합뉴스]

2020학년도 수능 수학영역 시험지. [연합뉴스]

올해 수능은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보는 내내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다만 감독관이 신분을 확인할 때는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 얼굴을 보여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불응할 경우 부정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꼭 규정에 적힌 내용이 아니더라도 감독관의 지시가 객관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면 문제없다는 취지의 판결도 있다.

2018년 수능을 본 한 수험생은 2교시 수학 영역 시험을 보던 중 감독관으로부터 “문제지의 이름과 수험번호를 샤프가 아닌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적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이 학생은 감독관의 지시 때문에 평소보다 수학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고, 지원하던 대학에 불합격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700만원을 물어달라는 소송을 냈다. 답안지가 아닌 ‘문제지’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는 것이 근거였다. 1‧2심 재판부는 “문제지의 인적사항이 지워지거나 수정되면 향후 응시자가 불이익을 감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감독관의 손을 들어줬다.

감독관이 수험생에 연락했다가 징역형

감독관도 조심할 점은 있다. 2018년 서울의 한 수능 고사장 감독관은 수험생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주소 등 개인정보가 포함된 응시원서를 받고 각 수험표와 대조하는 과정에서 한 여학생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 10일 뒤 감독관은 “사실 맘에 들어서 연락했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감독관은 수험생의 동일성 확인을 위해 개인정보를 받아 지휘‧감독하는 사람”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시험 감독 업무 수행을 위해 수험생들의 개인정보를 받은 것이지 개인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수능이 너무 어려웠다면 국가 책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2019년 2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2019 수능의 교육과정 위반으로 인한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장 제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2019년 2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2019 수능의 교육과정 위반으로 인한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장 제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2019학년도 수능은 최강  ‘불수능’으로 평가받는다. 이의신청이 역대 최다인 991건에 달했고 평가원장도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사과했다. 이에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은 평가원을 상대로 개인당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문제로 인해 입은 정신적‧물질적 피해가 크다는 이유였다.

1‧2심 재판부 모두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능은 수험생들이 고교 교과과정의 학습 내용을 체득해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능력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를 판단하는 시험이므로 몇몇 문항의 난이도 조절에 다소 미흡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법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명백한 출제 오류, 수험생에 배상해야

[중앙포토]

[중앙포토]

다만 법원은 명백한 출제 오류에 대해서는 평가원과 국가가 오답 처리된 수험생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과목에서는 유럽연합과 북미 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에 관한 문제가 출제됐다. 교과서에 실린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정답이 2번이 되지만, 2012년도를 기준으로 하면 이는 오답이 된다. 당시 이러한 내용이 인정돼 평가원은 뒤늦게 세계지리 성적을 재산정했고, 1년 뒤 대학에 추가 합격한 학생들이 발생했다.

부산고법은 2017년 “평가원은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된다”며 “1학년 과정을 뒤늦게 이수하게 된 학생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평가원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3년이 지나도록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 당시 피해를 본 학생들에 대한 손해배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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