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유예 없다는 정부에, 현장에선 "벌금 무는 수밖에"

중앙일보

입력 2020.11.30 18:14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내년 1월 50~299인 기업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을 예외없이 시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내년 1월 50~299인 기업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을 예외없이 시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1월 50~299인 사업장에 대해 주 52시간제를 유예 없이 시행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중견·중소기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조선업 등 납기 일에 따라 일감이 한꺼번에 몰리는 업체는 주 52시간제 시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불법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관련기사

"조선업계, 숙련 근로자 20% 이직" 

내년 1월 300인 미만 중소기업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그래픽팀

내년 1월 300인 미만 중소기업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그래픽팀

경남지역 A 중형 조선소의 인사팀장은 "야외에서 구조물 조립을 하는 조선업 특성상 기상에 따라 근무일이 들쑥날쑥하다. 연장근로를 못 하게 되면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초과 근무를 안 하려면 인력 채용을 늘려야 하지만, 지금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조선소 외에 그런 여력을 갖춘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남지역 중형 조선소 중 주 52시간제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시행되면) 불법 기업이 되고, 벌금을 무는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에 대해서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납기일 막판엔 근무 시간이 주 68시간을 넘기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숙련 근로자의 이탈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최근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 특히 잔업 특근이 많은 조선업 특성상 임금 감소로 20%가량이 다른 업종으로 이직할 것을 예측된다"고 말했다. 정 상무는 "생산성 하락에 따른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가장 뼈아픈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부품 업체도 마찬가지다. 300인 미만 B 부품업체 회장은 "지금도 인기 차종의 경우 주 60시간 가동해도 납기를 맞추기 빠듯한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이후 회복기에 생산이 정상화 되면 계약 물량을 맞추기가 더 힘들어진다. 공급 차질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B사 회장은 "직원은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기업은 대규모 투자를 한 설비를 놀리면 감가상각이 커져 제조원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주 52시간제를 유예하거나 특별연장근로와 탄력근로 등 유연성을 더 확보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 52시간제로 인한 인력난 가중은 중소기업계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이다. 앞서 지난 16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500개 사를 설문 조사한 결과 약 40%가 주 52시간제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채용인력에 대한 비용부담(52.3%, 중복응답)"이 첫 번째로 꼽혔으며, "구인난(38.5%)"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28.7%)" 등이었다.

50인 미만, '1년 계도기간' 적용을 

일감 부족으로 문 닫은 경남 지역의 한 조선소. 뉴스1

일감 부족으로 문 닫은 경남 지역의 한 조선소. 뉴스1

주 52시간제는 내년 7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올해 50~299인 사업장에 대해 '1년 계도기간'을 가졌지만, 50인 미만에 대해서는 계도기간 없이 곧바로 주 52시간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50인 미만 C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는 "지금 잔업·특근을 해서 월급 300만원 정도 받는 근로자가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면 220만~230만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워라밸도 좋지만, 누가 월급 줄어드는 걸 반기겠나. 결국 회사와 근로자 모두가 원치 않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농기계 부품을 납품하는 D사 대표는 "인력 충원을 못 하는 상황에서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수주받은 물량의 20~30%를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300인 미만에 적용한 대로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서도 '1년 계도기간'을 적용이 필요하다. 1년 정도 시간을 더 주면 자동화 등 투자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이날 정부 발표에 우려 입장을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코로나19로 유례없이 어려운 경영 상황에서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며 "이런 현실에서 계도기간 종료는 중소기업에 혼란과 불안감을 가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경련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중소기업의 초과 근무가 어려워져 인건비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탄력근로제 등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달라"고 밝혔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