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승현의 시선

‘법조인대관’은 추미애의 거짓을 알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2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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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김승현 정치에디터

김승현 정치에디터

20여 년 전 신참 사회부 기자 때 ‘한국법조인대관’을 처음 봤다. 사회부장 자리 주변에 놓인 우람한 책에 위축됐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고향집 책장에서 가장 두꺼웠던 가정의학대백과 수준의 두께도 위압적이었지만, 그 안에 수록된 쟁쟁한 인물에 놀랐다. 역대 사법시험에 합격한 전·현직 판·검사와 변호사 수천 명의 인물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총장 직무배제 근거 재판부 사찰
법조계 흔히 유통되는 인물정보
실세 수사 막으려 ‘악당’ 만드나

이름 가나다순으로 명함 크기의 공간에 얼굴 사진, 생년월일, 출생지, 출신 고교·대학, 법조 경력, 전문 분야와 석·박사 논문, 가족 관계, 취미가 수록됐다. 책장을 넘기다 친구나 선·후배 얼굴을 찾으면 반가우면서도 초라한 이력이 비교돼 안쓰러웠다. 제 코가 석 자인데도 ‘저 세계에서 잘 견뎌낼까’ 하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 책이 법조 기자에겐 ‘길잡이’라는 걸 곧 알게 됐다. ‘크고 넓게 전체를 내다본다’는 ‘대관(大觀)’의 의미처럼 취재 포인트를 찾는 교본이었다. 판·검사가 연루된 권력형 게이트가 터지면 어김없이 책에서 고향과 출신 학교를 확인하고 동문을 추적했다. 지인들이 ‘유능한’ 변호사를 찾을 땐 학연과 지연의 연결고리를 알려줬다. 책과 친해질수록 전관예우 등 법조계의 커넥션을 의심하는 능력이 생겼다.

법조인대관의 진가는 인사철에 발휘됐다.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청와대가 어떻게 지역 안배를 했는지 계산하는 데 요긴했다. 승진자의 신상명세를 정리하다 보면 정권 실세의 입김이 드러났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법조인대관은 그 옛날의 전화번호부나 지금의 내비게이션 같은 생활필수품이었다. 신문사나 법원·검찰 기자실에 놓인 공용 법조인대관이 항상 반으로 쪼개지거나 표지도 없이 너덜너덜했던 이유다.

법률신문사에서 1982년부터 3년마다 만들던 법조인대관은 이젠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로 진화했다. 수천 명 수준이던 수록 법조인은 2만6000여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 사이 전관예우의 폐해를 조장한다거나 개인 정보를 무단 수집했다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법조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전지전능한 포털 검색의 위협 속에도 발행사 측은 “법조계와 사회를 이어주는 우리 사회의 자산”이라고 홍보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린 직무배제 결정의 한 가운데에 이 책이 등장했다. 직무배제의 두 번째 이유로 ‘주요 사건 재판부에 대한 불법 사찰’을 제시했는데, 그 근거 자료의 출처가 법조인대관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추 장관이 ‘불법 사찰’로 지목한 자료는 대검찰청에서 작성한 ‘주요 사건 재판부 현황’이다. 자료를 만든 성상욱 전 대검 수사정보2 담당관(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장검사)은 검찰 내부 게시판에 소논문 형식의 반박문을 올렸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법조인대관과 언론기사, 포털사이트와 구글을 통해 검색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으며 공판검사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전화로 문의했다”며 “마치 미행이나 뒷조사를 통해 해당 자료를 만든 것처럼 오해되고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고 했다.

불법 사찰의 비밀병기가 법조인대관이었다니! 법조 ‘물’을 먹어 본 피고인도 실소(失笑)할 일이다. 그 너덜너덜한 책에 있던 개인정보를 모았다고 불법 사찰 폭로 회견까지 했단 말인가. 법무부 장관 자신도 전직 판사로 등재된 그 법조인대관 아니던가.

성 부장검사의 반론에선 울분이 느껴진다. 그는 “이 자료를 작성한 의도는 누구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사건 공판 검사들이 공소유지를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약점을 잡아 악용하려는 게 이른바 ‘사찰’이지 어떤 처분권자(판사)에 관한 유의사항을 피처분자(공판검사) 입장에서 정리한 게 사찰인지요”라고 적었다. “경찰관이 동료에게 ‘A검사는 성범죄 영장을 까다롭게 본다’고 알려주면, 대학생 선배가 후배에게 ‘B교수의 출제 경향’을 알려주면 사찰인지요”라고도 했다.

‘법꾸라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촘촘한 그물망을 짜는 검사의 성실한 일상을 ‘사찰’과 ‘혐의’로 매도한 것은 오히려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정보력과 자금력으로 무장한 피고인, 전관예우의 갑옷을 입은 변호사와 싸워야 하는 공판검사의 입증 책임을 아는 판사 출신이라면 더 악랄한 속임수다.

“전화번호부에서 연락처를 훔쳤다”는 식의 어리석은 ‘악당 만들기’를 멈추기 바란다. 상식을 몰상식으로 몰아붙이는 무리수는 합리적 의심만 키울 뿐이다. 재판과 수사에 조국과 유재수, 송철호와 월성 원전의 이름이 등장해서 이러는 게 아니냐는.

김승현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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