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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희옥의 한반도평화워치

미국의 대중 압박에 어떻게 참여할지 정교한 대응 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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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바이든 시대 미·중 대응법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3일 “바이든 선생과 해리스 여사에게 축하를 표시한다”라고 발표했다. 시점도 늦었고 당선인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 본인의 언급도 아니다. 여기에는 바이든 정부를 보는 중국의 복잡한 심경이 묻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돌발행동 가능성과, 이후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를 동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시대 미·중은 협력·갈등 반복하는 유동적 상황 예상 #한국 운신 제약하는 숙명론도, 희망적 사고 매몰도 경계해야 #미국 정권 교체기에 미·중이 보내올 명세서 제대로 대응하려면 #부처 칸막이 걷고 전문가 참여시켜 대차대조표 집중 검토해야

중국은 일단 관망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 70주년을 맞아 미국과 날을 세웠던 결기도 바이든 당선 이후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내년 공산당 창당 100년을 맞아 어떤 방식으로 업적 정당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세계 주요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한다고 해도 사회주의 중국을 겨냥한 미국과의 체제 경쟁이라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 시기 105개에 달했던 전략대화 채널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바이든의 정책 우선순위에 올라 있는 코로나19, 경제 회복, 기후변화 등에 대해 중국이 선제적으로 협력할 방안도 찾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은 예고한 대로 동맹과 다자주의를 최대한 활용해 중국의 급소를 겨누면서 민주주의 갱신(renewing)을 실천하려 할 것이다. 특히 기술 독재로 규정한 핵심 산업에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방식의 지대 추구 행위를 비판하고, 그 자리에 미국식 가치로 질서를 세우고자 할 것이다. 이것은 1858년 톈진조약을 체결한 이래 중국을 기독교화·민주화·개방화하려는 미국의 오랜 열망이었으며, 중국의 국력이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에서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미·중, 완전한 디커플링은 불가능

문제는 미·중 간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 미·소 냉전기와 같은 독자 이데올로기·진영에 입각한 경제 시스템과 군비 경쟁이 재연되기 쉽지 않다. 미국이 ‘중국 때리기’의 반사이익만으로 상처가 깊은 미국병을 치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와중에 글로벌 기업인 애플은 중국 기업에 아이폰 생산을 위탁했다. 테슬라는 상하이에 제2공장을 건설 중이다. 보잉도 2038년까지 약 8620대의 항공기 구매 수요가 있는 중국 시장을 지키려 한다. 상하이에 소재한 미국 기업의 70%도 엄청난 시장인 중국을 떠나 본국이나 인근 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미국의 동맹국들도 ‘민주주의 정상회의’ 결의만으로 대중국 견제와 봉쇄에 일사불란하게 참여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도 미·중의 일방적 갈등보다는,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는 유동적 상황으로 인해 쉽지 않다. 신냉전이 불가역적이라면 한·미 동맹에 편승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은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25%에 달하고 단기적으로 탈중국화가 쉽지 않아 중국과의 상호 의존이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대해 어떤 수위와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미·중 관계를 상수로 놓고 한국의 운신을 제약당하는 숙명론에도 문제가 있지만, 희망적 사고에 매몰돼 변화하는 질서를 놓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안을 잘게 쪼개 다양한 선택지를 만드는 실용주의적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도 참여와 불참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양해각서(MOU)를 맺는 방식이나 제3국 진출, 공동 협력 사업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실제 이탈리아·일본·독일·프랑스가 그렇게 해왔다.

여전히 설계 중인 경제번영구상(EPN)이나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도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체제인지, 신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같은 배타적 방식인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화웨이 문제만 해도 정보통신 기업의 도산에 이를 정도로 장비 사용을 배제하라는 요구와, 반도체 칩 공급에 대한 기업의 자발적 선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참여도 대중국 군사 견제를 명시하는 것인지, 보편적 가치와 지역 협력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선택의 범위와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미·중, 상대방 알기 위해 공부 모드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가 아니라, 문제를 중심에 놓고 수평적으로 공부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 중국의 WTO 가입에 역할을 하고, 부통령 시절 부주석이던 시진핑과 전략대화를 하는 등 누구보다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런데도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바이든 정부에 초당적 중국연구그룹 구성을 제의했다. 중국도 내년부터 시작될 14차 5개년 규획에 미·중 관계를 집중적으로 고려한 방안을 재설계하고 있다. 당 지도부인 정치국원들은 인공지능·블록체인에 이어 양자역학을 집체학습의 주제로 삼아 미·중 간 게임 체인지를 준비하는 공부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 정부 내에서 부처 칸막이를 걷고 공부하며, 여론이 아닌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정교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 친미·친중 프레임에 갇혀 정책 공론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동안 한국이 주변국들보다 바이든과 더 친하다고 우기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만 난무하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미국이 외교정책의 핵심 참모들을 인선하고 구체적 외교정책의 청사진을 만드는 짧은 과도기라도 미·중이 보내올 명세서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집중적으로 만들어 검토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에 대응하는 중국의 네 가지 시각

중국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술적 난관이라면, 조 바이든 정부는 전략적 시련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비이성적 강경 정책에 대해 ‘강(强) 대 강(强)’이라는 전면 대결을 선택했다면, 바이든 정부에 대해선 주전론과 주화론 등 다양한 시각이 등장해 토론 중이다.

첫째, 적극 행동론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갈등은 전방위적으로 퍼질 것이기 때문에 사안별 접근이라는 전술적 방어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G2를 구축하는 등 근본적이고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물러날 경우 달러 의존 체제와 미국 주도 가치사슬 체계 속에서 중국의 위기를 더욱 가중할 것이다. 특히 민족적 자부심으로 무장한 밀레니엄 세대를 중심으로 강경 여론이 드세다.

둘째, 신중론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과 다자(多者)를 중심으로 대중국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과도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으며 전략적 유연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국 경제 특성상 국내 대순환을 위주로 국제 대순환을 결합해 숨 쉴 공간을 확보하면서 국제 경제 환경을 바꾸면서 미국의 대중 정책의 예봉을 꺾어야 한다.

셋째, 시기상조론이다. 새로운 미·중 관계는 냉전 징후가 있으나, 중국은 종합 국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최대한 충돌을 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제도·이데올로기 도전에 맞서 국내 민생 발전과 개선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미·중 간 게임체인저를 위한 실력을 구비할 때까지는 내부를 정비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유지해야 한다.

넷째, 중국 담론 건설론이다. 중국은 코로나19 발원지, 초기 대응 문제, 홍콩 민주화,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인해 주변국과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돼 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때려도 우리를 동정하는 나라가 없다’는 자성이 등장했다. 미·중 관계 관리 등 강대국 위주의 외교정책을 전개하는 동안, 주변 지역을 소홀히 함으로써 우군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점에서 주변 지역에 대한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강화해야 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