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단계 선제조치"라는 정부...전문가는 "이미 또 한 발 늦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1.5단계로 올린 지 불과 사흘 만에 2단계 격상 카드를 꺼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닷새째 300명 넘자 급해졌다. 전문가들은 지난 2~3월 대구·경북, 8월 유행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고 본다. 겨울 문턱에 접어든 점이 더 큰 위험 요소다. 정부가 이번에 선제적 대응을 했다고 하지만 조금씩 늦고, 최악의 상황 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대응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대응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4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2주간 수도권의 거리두기 단계를 2단계(호남권 1.5단계)로 격상한다고 발표했다. 수도권(인천 제외)의 경우 지난 19일 1.5단계로 상향한 지 닷새 만이다.

중대본 22일 "수도권 2단계 격상" 발표 #"이전 같은 효과보려면 더 강한 억제 필요"

중대본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의 심각성, 거리 두기 상향 준비시간, 열흘 남은 수능(12월 3일)을 고려해 한시라도 빨리 감염 확산을 억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식당 오후 9시 영업제한, 결혼식장 100명 미만 등 일상 제한이 다시 시작됐다. 식당 조치는 지난 9월 14일 이후 71일 만이다.

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대형 임용고시 학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가운데 이날 오후 동작구보건소에서 학원생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대형 임용고시 학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가운데 이날 오후 동작구보건소에서 학원생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통상 거리두기 효과는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1.5단계의 영향을 채 확인하기 전에 이처럼 추가 조정을 서둘러 발표한 건 당분간 확산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중대본은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수도권은 화요일(24일) 정도에 거리두기 2단계 기준을 충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 조처를 했다고 말한다.

박능후 중대본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22일 브리핑에서 “앞서 2번의 유행은 유행 확산의 중심집단이 있었기에 이들을 선제적으로 검사하고 격리하는 차단 조치가 유효했다”며 “지난 2~3월의 유행보다 지금은 훨씬 큰 규모의 대규모 확산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대본에 따르면 최근 1주(11월 15~21일) 하루 평균 수도권의 확진자는 175.1명으로 2단계 격상 기준인 200명에 임박했다. 호남권은 27.4명으로 2단계 기준(30명)에 근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방역조치. 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방역조치. 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현 대규모 확산 상황이 앞선 두 차례 유행보다 심각하다며 최근 연일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김동현 한국역학회장(한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세계적으로 겨울에 접어들면서 일본만 해도 이전보다 피크가 강하게 나타나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패턴을 보인다”며 “국내에서는 전국 각지 일상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환자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2~3월에는 신천지대구교회 관련 감염이, 지난 8월에는 사랑제일교회와 도심집회가 주도했다면 지금은 주변에서 잇따르고 있다. 최근 2주간 62개의 집단감염이 나타났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경각심이 낮아진 상태이고 거리두기 단계 자체도 완화됐기 때문에 억제 정책이 바로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거리두기 동참 정도에 따라 더 큰 규모의 유행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겨울 코로나’ 걱정이 태산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3월과 8월에는 방역 조치도 효과를 일부 봤지만, 이면에는 계절적 요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지금은 춥고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생존하는 불리한 상황이다. 바이러스 전파력도 초기와 달리 세졌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밤 강원 화천군 보건당국이 사내면에 설치된 이동 선별진료소에서 주민과 군장병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밤 강원 화천군 보건당국이 사내면에 설치된 이동 선별진료소에서 주민과 군장병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라도 2단계 격상을 내놓은 게 다행이긴 하지만, 극적인 효과를 거두긴 어려울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좀 더 일찍 선제적 조치가 필요했는데 실기했고, 종전 3단계 방식의 2단계보다 지금 방식(5단계)의 2단계에서 일부 조치가 느슨하다고 지적한다.

가령 종전 방식 2단계에서는 노래방·PC방 등 고위험시설로 규정된 12곳은 문을 열 수 없었는데 현재는 클럽 등 유흥시설에 한해서만 그렇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이전보다 완화된 조처는 대표적으로 노래방과 PC방의 문을 열게 한 것”이라며 “대신 밤 9시 이후의 규제와 영화관 등에서 한 칸씩 띄워 앉게 하는 등의 조처는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주 교수는 “더 선제적으로 올려야 했는데 이미 늦은 감이 있다”며 “과거 기준에 따르면 확진자 상황은 오히려 3단계를 넘은 상황인데 현재의 거리두기 2단계는 과거 2단계만도 못하다. 극적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석 교수도 “여름철이라면 같은 방역 수준을 적용해도 더 나은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현재는 같은 수준에서 동일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동일한 수준의 억제력을 가지려면 더 강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동안 환자가 늘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앞서 대한감염학회 등 국내 11개 감염병 관련 전문학회는 20일 성명서에서 “효과적인 조치 없이 1~2주일 지나면 일일 확진 환자가 1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경고했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된 만큼 1000명까지는 아니지만 금방 확산세가 잦아드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일부 전문가 의견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가 시행중인 22일 경남 하동군 하동읍 한 식당 테이블 위로 의자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가 시행중인 22일 경남 하동군 하동읍 한 식당 테이블 위로 의자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당분간 환자가 수백명대로 늘 것”이라며 “앞서 1.5단계 격상 발표가 있었지만, 예상만큼 모임 등을 자제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고 정부의 조처 또한 한 발짝씩 늦다. 소비쿠폰 문제를 봐도 민·관이 해이해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1.5단계로 격상하면서 외식 등을 장려하는 소비쿠폰 사업 또한 지속하겠다고 밝혀 부처 간 엇박자 논란이 일었다. 정 교수는 “전국적으로 지역 발생 환자가 100명 밑으로 내려가야 단계를 낮추면서 조금씩 완화해갈 수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중환자 대응 여력도 머지않아 한계에 달할 위험이 있다. 최원석 교수는 “환자가 줄지 않을 경우 1~2주 후엔 중환자 병상이 찰 것이고 적절한 치료를 못 받아 치명률이 올라가거나 다른 질환자가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주 교수는 “이런 속도라면 2단계로 올리더라도 대구·경북 유행 당시 집에서 입원을 대기하다 사망하던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동현 교수는 “2단계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최소 일주일 가량 걸리고, 그 사이 또 1000~2000명의 환자 생겨 이들 중 3~5%는 중환자로 진행될 것”이라며 “간호 인력 등의 확보가 필요한데 단기간 쉽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북대병원 음압 중환자실에서의 중증 환자 진료. 사진 대구광역시

경북대병원 음압 중환자실에서의 중증 환자 진료. 사진 대구광역시

박능후 장관은 “현재 즉시 입원할 수 있는 중환자 병상은 113개로 수도권은 52개를 보유하고 있다”며 “아직 여력이 있지만 위중증 환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중환자 병상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갖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까지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 가운데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38개 병상과 긴급치료병상 30병상 등 최소 68병상을 추가로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