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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축구협회의 코로나 참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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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호 30면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코로나 팬데믹 세상에서 대한민국은 K-방역의 효율성과 우수성으로 돋보였다. 그런 와중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과 축구협회가 ‘코로나 진창’에 빠졌다. 오스트리아에서 두 차례 평가전을 치른 대표팀에 무려 1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선수 7명, 지원 스태프 3명이다.

유럽 원정 대표팀서 황희찬 등 10명 확진 #‘방역 담당관 동행’ 조언 무시해 사고 자초

골키퍼 조현우(울산)와 권창훈(프라이부르크), 황인범(루빈 카잔), 이동준·김문환(이상 부산), 나상호(성남) 등 6명은 1차전(멕시코에 2-3 패)이 열리기도 전에 확진 판정을 받아 일찌감치 격리됐다. 황희찬(라이프치히)과 스태프 한 명은 2차전(카타르에 2-1 승) 직후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앞선 세 차례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던 황희찬은  최종 검사 결과를 모른 채 독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도착 후 양성 판정 소식을 들었다. 구단은 공항에 차량을 대기시켰다가 황희찬을 태우고 격리 장소인 호텔로 이동했다. 구단은 음식과 이불·수건 등을 갖다 주며 조심스럽게 예후를 관찰하고 있다. 황희찬은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당황했으나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다행히 발열이나 기침 등 증세는 없고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이상은 황희찬 측근이 내게 들려준 얘기다.

축구 대표팀의 무더기 확진 사태에 대해 무성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우선 요즘 같은 세상에 ‘코로나 소굴’인 유럽까지 가서 A매치를 해야 했느냐는 원망이다. 골 세리머니를 하면서 여러 선수가 뒤엉키는 장면도 아찔했다. 카타르전에서 황희찬이 골을 넣은 뒤 손흥민과 포옹하는 장면도 있었다. 화들짝 놀란 토트넘 구단은 카타르전이 끝난 직후 전세기를 보내 손흥민을 모셔 갔다. 다행히 복귀한 뒤 실시한 검사에서 손흥민은 음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이 숙소에서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집단 감염이 생겼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피아 게임은 5~10명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사회자가 비밀리에 지정한 마피아를 찾아내는 일종의 심리 게임이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침 튀기는’ 논전을 펼치기도 한다. 대표팀에서는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카타르 월드컵 지역 예선 때부터 마피아 게임이 유행했다.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통제된 숙소에 있다 보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피아 게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원정에 함께한 A선수는 “한꺼번에 10명이 한 적도 있다. 게임의 지존은 손흥민이었다”고 말했다.

어떤 경로로 집단 감염이 이뤄졌든 간에 대표팀 안전과 위생을 책임져야 할 축구협회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중앙일보 축구팀장 송지훈 기자는 지난 6일 자 칼럼에서 이번 원정에 방역 담당관을 데리고 갈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원정 대표팀 주치의를 외과 전문의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로 바꾸는 선에서 그쳤다. 주치의와 방역 담당관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 축구협회 의무분과 위원이었던 B씨는 “주치의는 부상이나 환자 발생 시 응급처치를 하는 게 주 역할이다. 이번에는 방역 최전선에서 선수들의 입출국 동선, 숙소에서의 행동 등에 대해 명확한 규칙을 제시하고 그것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외부 전문가’가 꼭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축구협회가 돈 몇 푼 벌기 위해 이번 원정 A매치를 강행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렇기에 더 꼼꼼하고 철저한 방역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돈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잃었고, K-방역의 빛나는 이름에 먹칠을 했다. 구단의 자산이기도 하고, 몸이 재산인 대표선수들은 유형·무형의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 조짐이 보여 걱정이다. 주말에 한국시리즈를 보러 고척돔에 가든, 소규모 모임을 하든, ‘설마’가 아니라 ‘혹시’라는 마음으로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겠다. 방심은 참사의 아버지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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