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선

유승민 “4번이라 졌다, 이번엔 2번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유승민(국민의힘,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220만 8771표(6.76%)를 얻었다. 박근혜 탄핵 사태를 겪으며 탈당해 바른정당 후보로 나와 4위를 했다. 그 후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찍고 싶었는데) “문재인이 될까 봐 못 찍었다” “홍준표가 될까 봐 못 찍었다”란 두 종류의 위로 인사였다. 분명한 군소정당 후보의 한계다. 하지만 성과도 있었다. ‘수구적 보수’ 탈피를 위해 내건 ‘개혁 보수’가 그를 어느 정도 중간 지대에 놓이도록 했다는 점이다. 당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유승민의 노선을 칭찬할 정도였다. 진보·중도층의 ‘홍준표가 될까 봐 못 찍었다’는 말이 그래서 고무적인 거다.

“마지막” 배수진 치고 대선 출마 #“양강 후보되면 가장 경쟁력 있어 #보수 유권자도 집권의지 가져야”

이제 그는 기호 2번을 꿈꾼다. 하지만 지금 지지율이 변변찮고, 등 돌린 영남 보수의 반감도 만만찮아 갈 길이 한참 멀다. 그가 지난 18일 자신의 여의도 ‘희망 22’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2월 “개혁 보수의 진심을 위해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한 뒤 9개월 만에 기자들 앞에 다시 섰다. 넓지 않은 공간에 5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기자들이 빼곡히 들어차 1시간 15분 넘게 질문을 던졌다. 시작이 그리 초라해 보이진 않았다. 서울시장 출마설을 단칼에 자르면서 “대선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그가 세운 전략은 경제를 앞세운 따뜻한 공동체 컨셉으로 수도권 젊은층부터 잡겠다는 거다. 간담회 후 그를 만났다.

대선 출마 각오는.
“마지막 도전이다. 모든 것을 걸 거다. 어떤 어려움 있어도 끝까지 간다. 대선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9개월 동안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나.
“나서면 무엇으로 표를 달라고 할 것인가다. 결국 경제였다. 저출산·양극화 극복의 열쇠가 경제다. 제 강점이 경제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 걷어 돈 푸는 것밖에 안 하지 않나. 복지와 노동을 포괄하는 경제를 하나씩 얘기할 거다. 따뜻한 공동체를 얘기해왔다. 거기에 귀를 연 수도권 젊은이의 마음부터 얻을 거다. 영남에서 저한테 섭섭하신 분들의 마음을 얻는 건 그 다음이다.”
지난 대선에서 왜 졌고 이번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나.
“지난번엔 4번이라 졌고 이번엔 2번이다. 양자 구도에선 중도·젊은 층의 표를 가진 후보가 제일 무섭다. 후보가 돼 영남의 서운한 분들이 지지해주면 제가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다.”
윤석열에 홍준표·안철수까지 링 위에서 겨루자고 했는데.
“홍준표 언제 들어오나, 안철수 언제 같이하나 이런 건 다 기술적인 문제고 국민의힘이라는 울타리에서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제일 좋은 후보를 한 사람 뽑는 게 핵심이다. 그래야 이긴다. 그러기 위해선 윤석열 등이 다 들어오기 위해 문호를 개방하자는 거다.”
‘보수 유권자가 집권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논란이 될 수도 있다.
“영남 보수가 정말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분열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투표장에 나오는 유권자들도 집권에 대한 권력의지가 필요하다. 투표율과 단일 후보를 만드는 과정 모두 유권자의 권력의지와 관련이 있다. 과거 보수가 정권을 오래 잡아서인지 은연중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날이 갈수록 아니다.” 
여권은 이낙연·이재명 구도로 갈 것 같나.
“아니다. 새 인물이 나와 경쟁할 거다. 문 대통령을 만들 듯 친문이 진짜 마음에 둔 후보가 있을 거다. 야권도 제3 후보를 신경 쓰면서 전략을 짜야 하지 않겠나.”
둘 중에선 누가 어렵다고 보나.
“다 대단한 후보가 아니다.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데 당 지지도를 나눠 갖고 있는 거다. 한 분은 악성 포퓰리스트고, 다른 한 분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그분들이 나라를 이끌 비전이나 철학을 내 본 적이 없다. 겁을 왜 내야 하나.”

정치인이 뭔가 큰 결심을 하면 달라지는 게 있다. 자신의 몸을 낮추는 모습이 현저해지고, 매사에 의욕이 극도로 충만해진다. 유승민에게도 그런 자세가 물씬했다. 권력의지에 대해 물었더니 “지난 대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했다. 9개월 잠행하는 동안 30년 넘게 피운 담배를 끊었고, 눈썹에는 살짝 짙어져 보이는 문신도 했다. 하지만 야심 차게 준비한 대선 출마 기자간담회에서 첫 질문으로 “서울시장 나가나”를 받아야 했다. 간담회에서 의미 있는 답변도 많았지만 기사 제목도 "서울시장 생각 없어”가 대부분이었다. 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대선주자로서 경쟁력이 아직 미약해서 그런 거다. 큰 결심을 한 만큼 냉철한 현실도 잘 알고 출발하길 바란다.

신용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