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과 문화관련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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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급격하게 받거나 혹은 오랫동안 받게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신경질이 나는 즉 울화가 잘 치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깜짝깜짝 잘 놀래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불안하고 우울하며 잠이 잘 안 오고 머리가 아프며 항상 피로하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우며 곧 쓰러질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화병(火病)이다.

스트레스 중에서도 특히 내적인 자극 즉,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스트레스 이른바 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증상이 곧 화병이다.

이는 주로 마음이 원인이 되어 오는 것으로, 이를테면 심리적인 쇼크나 정신적인 갈등에 의해서 뇌에 기질적인 변화가 없이 일어나는 정신적 혹은 신체적인 증상을 수반하는 병을 말한다.

최근 미국정신의학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Hwabyung으로 공식표기하고 있으며 화병은 한국인에게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문화관련증후군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화병의 실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부족으로 볼 수 있으며 좁은 의미의 화병의 뜻풀이로 분노증후군(Anger syndrome)으로 본 것 또한 화병을 포괄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결과이다.

◇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억제하기 때문에 발생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억제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신경성적인 화 즉, 울화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모든 병증을 화병으로 보는 것이다.

이 감정에는 분노(怒:노), 기쁨(喜:희), 사려(思:사), 우울(憂:우), 슬픔(悲:비), 두려움(恐:공), 놀람(驚:경) 등의 사람이 사물에 대해 느끼는 일곱 가지의 감정변화 즉, 칠정(七情)이 있다.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화병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화병의 용어는 이미 명대(明代)의 명의이었던 장개빈이 사용하였고,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한의학적인 용어가 아니다. 화병 역시 마음속에 응어리진 불안심리로 인해 나타나는 병증이므로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노이로제와도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느나라에서도 화병환자는 있는 것이다.

◇ 화병의 다양한 원인

화병의 원인으로는 배우자와의 갈등, 시댁식구들과의 갈등, 과도한 업무, 사업실패, 자녀의 비행이나 시험낙방, 자신의 오랜 지병, 가족의 갑작스러운 사망, 정보의 홍수, 교통체증, 정치의 불만족감, 날마다 치솟는 물가고, 집세의 폭등 등을 꼽을 수 있다.

한방정신과에서 취급해야할 모든 문제들은 극소수의 기질적 자애를 제외하고는 마음이 상한 것을 풀지 못한 데서 일어나는 ‘화병’이므로, 진찰이란 환자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며, 치료란 이 마음의 상처를 고쳐주는 것이 된다.

다시말해 한의학이란 종래 서양의학이 망각하고 있는 맹점인, 바로 이 기질적 고장이 없는 병인 화병, 즉 마음의 상처가 원인이 되는 병을 진료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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