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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인수하려면 요기요 매각하라” 공정위, M&A 급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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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조성욱 공정위원장(左),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右)

조성욱 공정위원장(左),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右)

잘 나가는 산토끼를 잡으려다 잘 키운 집토끼를 잃을 판이다. 배달의민족(배민)을 잡아 몸집을 키우려 했던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 이야기다.

조건부 승인 심사보고서 ‘반전’ #배달앱 1·2위 독과점 해소 주문 #예상밖 강력한 조건에 업계 술렁 #독일DH “절대 동의 못해” 강력반발 #공정위 “내달 전원회의, 확정 아냐”

공정거래위원회가 DH에 국내 1위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민을 인수하려면 자회사인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DH는 16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우아한형제들(배민 운영사) 인수에 대해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요기요 운영사)의 매각을 승인 조건으로 한 심사보고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DH는 지난해 40억 달러(약 4조7500억원)을 들여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고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1년여의 조사를 마친 공정위가 두 기업의 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는 심사보고서를 전달한 것은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라는 주문이다. 배달앱 시장의 경쟁이 제한되고 이에 따라 소비자 후생이 저해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1·2위 사업자인 두 회사의 사업 영역을 배달앱 시장으로 한정하면 두 회사의 점유율은 이미 90%를 넘기며 독과점이 된다. 이는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획정’을 하면서 두 회사의 영업 범위를 음식 배달앱 시장으로 좁혀 봤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9월 배달앱 이용자는 배달의민족(59.8%), 요기요(30%), 쿠팡이츠(6.8%), 위메프오(2.3%), 배달통(1.2%) 순이었다. 현재 DH코리아는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음식 배달 앱 순위

국내 음식 배달 앱 순위

DH 측은 이날 “공정위 제안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DH가 거금을 배민 인수에 베팅한 것은 바로 요기요가 있어서다. 두 회사를 합쳐 확고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었다. DH는 요기요 매각 조건에 대해 “기업 결합의 시너지를 통해 한국 사용자의 고객 경험을 향상하려는 DH의 기반을 취약하게 할 수 있다”며 “음식점 사장님, 라이더, 소비자를 포함한 지역사회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DH는 추후 열릴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위 위원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인수를 당하는 쪽인 우아한형제들은 구체적인 입장 발표 없이 “공정위에서 부르면 가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예상했던 수수료 인상 제한보다 더 강력한 조건이 붙어 관련 업계 전체가 술렁이는 상황”이라며 “DH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만큼 최종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선 공정위의 시장 획정 방식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외식 시장에서 배달앱이 차지하는 비중은 15%가량에 불과하다”며 “ICT 기반 기업이면 쉽게 배달앱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 배달앱만 놓고 시장을 획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일례로 쿠팡의 ‘쿠팡이츠’는 1년 새 월간 순이용자가 120만 명 가까이 늘며 급성장하고 있다. 2008년 미국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할 때도 두 회사의 오픈마켓 점유율이 87%에 달했지만, 쿠팡 등 신규 사업자가 계속 나오면서 지금은 시장 판도가 크게 달라졌다.

공정위는 기업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후 이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친다. 다음 달에는 전원회의를 열고 승인 여부와 조건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거에도 심사보고서에 포함됐던 기업결합 승인 여부, 조건 등이 전원회의에서 바뀐 적이 있다”며 “이번 건도 전원회의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 발송된 심사보고서만으로 공정위의 입장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전영선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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