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에 찾아온 기회다. 더 이상 정당 간의 거래와 재벌과의 동행으로, 개혁을 바라는 국민 열망을 훼손시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내용이다. 이 지사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감독그룹법 등 이른바 '경제 3법'(이 지사는 ‘공정경제 3법’으로 표기)의 완화 움직임을 지적하며 “재벌개혁 후퇴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경제 3법에 대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국민경제의 안정성과 혁신기업의 활력을 돕는 법률”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 지사가 문제 삼은 것은 ‘3%룰’(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규정)의 완화 움직임이다. 당초 정부안에는 감사위원을 선임·해임할 때 최대주주 의결권을 특수관계인 등과 ‘합산’해 3%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최근 여권은 이를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지사는 “안타깝게도 당초 최대 주주 ‘합산’에서 ‘개별’ 적용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습”이라며 “개별 안이 되면 대주주 측은 각각의 3%씩을 인정받게 돼 특수관계인의 숫자만큼 권한이 늘어나, 애초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비판했다.
이 지사는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공정경제 3법 논의에 집중투표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데, 현재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에는 빠져있다”며 재논의를 요청했다. 이 지사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였던 13일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당론 채택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등 최근 당 정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입법 국회 앞두고 정책 발언
지난 9월 초만 해도 4차 추가경정예산안의 코로나19 지원금 선별 지급 방침을 두고 여당 지도부와 각을 세웠던 이 지사는, 한동안 당내 정책 결정에 대해 반기를 들지 않았다. 당·정이 갈등을 겪던 ‘3억원 대주주 기준’에 대해선 “기재부의 관점은 과거 고도성장기의 사고에 그대로 머물러 영원한 어린이 피터팬을 보는 것 같다”며 당 지도부의 손을 들었다. 국민의힘이 옵티머스 사건을 고리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공격하자 “수준 낮은 음해 정치 그만하라”며 방어에 앞장섰다.
하지만 국회가 국정감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입법 논의에 돌입하면서 이 지사의 발걸음은 다시 빨라지는 모양새다. 특히 ▶경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기본소득 탄소세 등 당 좌·우 이견이 있는 정책에서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이 지사는 정부·여당의 방침이 정해지면 그대로 따르지만, 사전 토론 과정에선 본인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며 “그래야 이후 더 과감하게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사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여야 의원 33명과 예산정책협의회를 연 데 이어, 13일엔 경기 지역 여야 의원 15명을 경기지사 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겸한 현안 간담회를 가졌다. 이 지사는 이날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 등 3대 '기본 시리즈'를 재차 설명하며 초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좌(左)클릭’으로 차별화?
정부·여당 일각에선 이 지사의 광폭 행보에 대한 불만도 없진 않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에선 외곽 포지션이니깐 국정에 대한 책임을 가진 이 대표와 달리 아무 부담 없이 ‘좌(左)클릭’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결국 본질은 자기 장사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실 보좌관 역시 “이 지사 입장에서도 예산과 법안이 처리되는 11~12월 정기국회가 본인 존재감을 높일 ‘모처럼의 기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 측도 고민이 없지 않다. 특히 청와대와 대립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걸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 지사는 이날 경제 3법 관련 메시지에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님께서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정경제 3법의 처리를 간곡히 당부했다”고 적었다. 지난 10일 기본소득 탄소세 도입을 주장할 때도 글 도입부에 “최근 문 대통령님께서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고 적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은 “외부에선 이 지사를 문 대통령과 대립시키려 하지만, 사실 민주당 정책만 놓고 보면 두 분이 가장 진보적으로 겹치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