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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아제르·아르메니아 휴전···아제르 대사 “평화·공존 희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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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지 테이무로브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제르바이젠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람지 테이무로브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제르바이젠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30년 넘게 쌓여있던 원망과 분노가 격전으로 번졌습니다. 이제 평화를 찾고 양국 국민이 공존하길 바랍니다.”

람지 테이무로브 주한 아제르바이잔대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아르메니아 국민과 잘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44일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지난 9일(현지시간) 휴전에 합의했다.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사관 집무실에서 람지 대사를 만나 현지 분위기와 평화 정착 가능성을 물었다.

람지 대사는 이번 교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이 탈환한 지역인 ‘슈샤(슈시)’ 얘기부터 꺼냈다. 슈샤는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국제법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지만 아르메니아의 지원을 받는 자치정부가 실효 지배하며 분쟁지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가 슈샤 출신"이라며 "14살에 슈샤를 떠나야했는데 이제야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감격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와 슈샤를 함께 찾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람지 대사는 아직 슈샤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 분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 분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옛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젠으로 편입됐는데, 주민의 80%는 동방정교를 믿는 아르메니아계 주민이었다. 반면 아제르바이젠은 이슬람을 믿는 튀르크계다. 옛 소련이 붕괴하자 이 지역의 아르마니아계 주민들은 독립공화국을 세워 아르메니아와 통합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아제르바이잔 측이 이를 거부하며 1992~1994년 양국은 3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전쟁을 치렀다.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는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젠과 가까운 터키 등 강대국간의 대리전 양상까지 나타나며 이후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휴전합의에서 아르메니아는 그동안 통제해온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상당 부분과 주변 점령지 등을 아제르바이잔 측에 돌려주기로 했다. 휴전을 중재한 건 러시아로, 양측의 충돌 방지를 위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약 2천 명의 평화유지군을 배치하기로 했다.

다음은 람지 대사와의 일문일답.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네 번째 휴전 합의다. 이번에는 합의가 유지될까.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전투와 모든 군사활동의 완전한 중단을 규정한 공동서명에 서명했다. 부처 급이 서명했던 이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러시아가 중재했고,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일부 지역을 양도하겠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 측이 이런 결정을 내린 건, 더는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곧 양국이 평화조약까지 맺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전쟁을 ‘종교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해다. 아제르바이잔은 수 세기 동안 다문화 땅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 단체들이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만약 종교가 이 갈등의 기반이 됐다면, 아제르바이잔과 코카서스의 또 다른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 사이에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을 거다. 
일부 외신에선 아제르바이잔이 승리하는데 주변국인 이스라엘이나 터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는 해석도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국제적으로는 아르메니아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과 터키 등에서 무기를 돈을 주고 구입했다. 우리는 아르메니아보다 인구도 많고, 경제력·군사력도 강했다.  
이번 합의로 도시 ‘슈샤’를 탈환했다.  
슈샤는 문화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morally) 아제르바이잔 국민에게 큰 의미를 지닌 도시다. 아르메니아인들이 해당 지역을 실효 지배하며 많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슈샤를 떠나야 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슈샤는 또 군사적인 요충지다. 산악지대인 슈샤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단 두 개뿐이다. 이번에도 슈샤 탈환을 위해 우리 병사들은 산을 기어 올라갔다고 들었다.
휴전 이후 아제르바이젠의 분위기는 어떤가.
수도 바쿠뿐 아니라 전역에서 다들 기뻐하고 있다. 문제는 모두가 거리로 나와 환호성을 지르다 보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우려도 생겼다. 지금은 다들 흥분해있다 보니 강하게 제재하기가 힘들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고 나면, 강한 규제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휴전 합의가 공개되자 예레반에선 주민 수천 명이 자국에 불리한 합의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섰다. 분노한 아르메니아 시위대는 “우리 영토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치며 정부 청사와 의회 건물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기도 했다. 또 일부 시위대는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와 가족이 거주하는 관저로 몰려가 퇴진을 요구했다.

이번 합의로 분쟁이 해소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옛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국민과 아르메니아 국민은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던 이웃이다. 지금도 주변국에서 서로를 이웃으로 두고 있는 사람도 많다. 양 국민이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증오를 멈추고,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국민이 원한다면 슈샤에 와서 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을 쫓아내고 싶어 한다고 누군가는 믿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들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르메니아 국민도 평화를 얻고 함께 살아갔으면 한다. 
람지 테이무로브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제르바이젠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람지 테이무로브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제르바이젠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3년부터 한국 대사를 맡고 있다. 지난 8년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려운 질문이다. 인상 깊은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의 문화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우리도 집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또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나 몸에 밴 친절함 등 양 국민의 정서가 비슷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양국의 교류가 주춤해졌지만 감염병이 종식되면 양국이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러시아·이란·터키 등으로 둘러싸인 아제르바이잔이 무역의 요충지라는 점도 한국 투자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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