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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지지율 1위 윤석열…‘정치 이대론 안 된다’는 뜻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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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에 올랐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1차적으로만 보면 이렇다 할 간판은 없고 고만고만한 대선 주자들이 난립하는 국민의힘 사정과 무관치 않다. 윤 총장에 대한 지지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가장 높았고, 이념 성향으론 보수층에서 많았다. 또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 정권 수사를 주도할 때만 해도 보수층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권 비리에 대한 수사도 밀어붙이자 보수층과 무당파 성향 유권자의 표심이 모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권력 비리 수사하자’는 게 밀어 올린 힘 #오죽하면 검찰총장이 유력 후보 됐겠나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지지율 상승이 최근 여권과의 갈등 속에 탄력이 붙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윤 총장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 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한 건 처음이다. 그가 얼마 전 “진짜 검찰 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공정하게 수사하는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 뒤 나온 결과다. 전 정권 관련 수사 땐 정의로운 검사라고 치켜세우더니 자신들에게 칼날이 향하자 적폐 검사로 모는 여권의 자가당착이 윤 총장을 밀어 올린 강한 힘이라고 봐야 한다.

권력형 비리 의혹이 쏟아지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라임 수사를 지휘해 온 서울남부지검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고 고백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권력 비리를 수사하자’는 윤 총장의 수사 지휘권을 박탈해 ‘식물 총장’으로 만들고 관련 사건 수사 검사들을 좌천시켜 수사를 흐물흐물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검찰총장을 공격하는 추 장관보다 윤 총장의 말에 박수를 보낸 셈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정계에 진출하거나 강력한 후보로 꼽히는 게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윤 총장은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도 없다. 오히려 올 초 여론조사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자 ‘조사 후보군에서 제외해 달라’는 뜻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지지율이 치솟고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힌 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갈증이 강렬하다는 뜻이다. 갑갑하고 마땅한 출구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새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의 기대가 섞인 희망 찾기다.

그런 점에서 윤 총장의 급부상은 기존 정치에 대한 레드 카드의 의미를 겸했다. 예전에 안철수 현상 등이 그런 갈증 속에서 증폭됐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정치권 밖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유력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건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이 높기 때문이다. 설익은 새 정치 시도는 기존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좌초했다. 그럼에도 반드시 성취돼야 할 시대적 과제다. 그의 대선 도전 여부를 떠나 정치권은 윤석열 현상을 곱씹어 보고, 정치 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여야 모두 각오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