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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노딜 너무 아쉽다" 외교안보 원로에게 털어놓은 文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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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외교안보 분야 원로 및 특보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외교안보 분야 원로 및 특보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 분야 원로·특보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지난해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것이 너무 아쉽다”는 취지로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분명 언급됐고, 한반도의 전쟁 없는 평화가 언급되면서 최종 목적이 비핵화라는 점도 언급됐는데…”라며 ‘하노이 노 딜(No Deal)’에 아쉬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12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를 앞두고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정의용·임종석 외교안보특보, 안호영·조윤제 전 주미대사, 장달중·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간담회는 낮 12시부터 시작해 오후 2시10분까지 이어졌다.

복수 참석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하노이 노 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아쉬움은 정의용 특보(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우리가 더 주도적으로 리더십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를 풀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하자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조금만 더 인내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선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의 대북 문제 해결 방식은 ‘바텀-업’(bottom-up, 실무자 간 협상에 주력하는 방식)일 텐데, 리버럴(개혁주의) 싱크탱크 인사들의 생각이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 브루킹스 연구소 등 리버럴 싱크탱크에서 한국을 담당하는 인사들의 대북 불신이 너무 심하다. 이걸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는 참석자의 조언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자 정 특보는 “문 대통령이 빨리 한·미 정상회담을 해서 북·미 정상회담도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추진 시점은 언급되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또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5일 유엔 총회 연설 이후 여러차례 종전선언을 언급해왔다. 그러다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진 이후 종전선언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풀어가는 데 어려움도 표현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 해결은 일제 피해자들의 동의와 합의가 선결 조건이고, 우리와 일본 측의 입장이 많이 달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지 고심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간담회엔 청와대 인사 중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배석했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에게 “서 실장도 좋고, 노 실장도 좋으니 언제든지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한 참석자는 “박근혜 정부 때 주미대사였던 안호영 전 대사까지 부른 것을 보면 다양한 얘기를 들으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탄소중립비전 관련 장관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탄소중립비전 관련 장관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오찬 간담회에 이어 오후 3시부터는 ‘2050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비공개 보고를 받았다. 탄소중립은 지난달 28일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목표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순(純) 배출을 제로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비공개 회의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경제·환경 분야 장관들이 모두 참석해 105분간 진행됐다. 문 대통령의 이날 회의는 바이든 당선인과의 정상통화를 의식한 일정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4일 “77일 안에 파리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에서 탈퇴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탄소중립은 우리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어려우면 남도 어렵다”라며 “어려움은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가 다시 가입하려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며 전 세계의 공통과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2050 탄소중립은 우리 정부의 가치지향이나 철학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 국제질서”라며 “국제적으로 뛰기 시작한 상태인데, 우리만 걸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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