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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만난 박지원, "한·일 갈등, 양국 정상이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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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 중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0일 오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지난 9월 스가 총리 취임 후 한국 정부 고위 관료와의 첫 만남이다.

10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30분동안 만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교도=연합뉴스]

10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30분동안 만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교도=연합뉴스]

박 원장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일본 도쿄의 총리관저로 들어가 4시가 조금 넘어 나왔다. 예방을 마친 박 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스가 총리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간곡한 안부와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전달하고 대북 문제 등에 대한 좋은 의견을 들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의 의견은 친서 형식이 아니라 구두 형식으로만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이어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선 "(스가 총리에게) 충분히 의견을 말씀드렸고, 어떻게 됐든 양국 정상이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며 "계속 대화를 해나가면 잘 되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또 "스가 총리가 친절하게 설명해 줬고, 자신의 책에 사인도 해 줘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이고 감사했다"며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한일관계를 건전하게 되돌릴 계기를 한국 측이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양측은 또 납북자 문제를 포함해 북한에 대한 대응으로 한·일, 한·미·일 협력을 확인했다. 통신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의견교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매일 오전 공개되는 스가 총리의 공식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아 비공식이거나, 급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임시 국회 회기 중이라 총리가 15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는데, 박 원장을 30분이나 만난 건 스가 총리의 의지"라면서 "평소 잘 웃지 않는 스가 총리가 면담 중 굉장히 밝은 표정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스가 총리와 박 원장의 이번 만남이 강제징용 배상문제, 수출 규제 등 산적한 양국간 현안을 풀어낼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날 회담은 30분 남짓으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기엔 짧았지만 박 원장은 "앞서 일본 정부 당국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조율했다"고 밝혀 이번 방일 과정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박 원장은 8일 오전 일본에 도착한 후 8일 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9일에는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 다키자와 히로아키(瀧澤裕昭) 내각정보조사관 등과 면담했다.

지난 2017년 6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의 특사로 방한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왼쪽)이 박지원 현 국정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전남 목포시 죽교동 공생원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6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의 특사로 방한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왼쪽)이 박지원 현 국정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전남 목포시 죽교동 공생원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20년 지기'인 니카이 간사장과의 만남에서는 한·일 양국 정상의 통 큰 선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渕 恵三)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잇는 새로운 정상간 선언으로 꽉 막힌 한일관계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일본 측은 박 원장의 이번 방일에 대해 "해외 정보기관 수장과의 논의인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니카이 간사장은 9일 기자회견에서 "매우 우호적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충분히 신뢰 관계를 유지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

또 "오랜 친구 사이라 옛정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서도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인 한국과의 관계에 관해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다"고 말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도 10일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한·일 관계가 엄혹한 상황에서 한국의 고위 관리가 일본을 방문해 북한 문제와 한·일관계를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조만간 양국이 합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박 원장이 이번 방일에서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1+1+α)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문희상안(案)'을 기반으로 한 절충안을 제시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반응도 나온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도 9일 회견에서 징용 문제 해결 조짐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대법원의 판결 및 관련 사법 절차는 명확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 측이 조기에 일본이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 다른 문제는 '시간'이다. 스가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일본 정가에서는 내년 1월 중 스가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한 소식통은 "그때까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에 대해 합의하기엔 시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일본이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협상의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서울=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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