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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니스트의 눈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2.0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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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바이든 시대와 세계

현직 부통령 시절이던 2015년 10월, 바이든 당선인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장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끝에 불출마의 길을 택했다. 오른쪽은 바이든의 부인 질 바이든. [EPA=연합뉴스]

현직 부통령 시절이던 2015년 10월, 바이든 당선인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장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끝에 불출마의 길을 택했다. 오른쪽은 바이든의 부인 질 바이든. [EPA=연합뉴스]

“바이든을 과소평가하기는 쉽다.”(파이낸셜 타임스 10월 25일 자) 필자가 한마디 덧붙이자면 우리는 바이든 시대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사상 최다 득표로 선출되었지만,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미국 안팎에서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다. 페이스북·트위터·카톡 방에서 바이든의 높은 연령, 특출한 개성의 결여, 카리스마의 부족을 지적하는 많은 포스팅을 우리는 접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이해·경험에 바탕, 실질적 행동할 것 #말보다 행동, 이념보다 해결책 찾는 외교 펼칠 듯 #아내·자녀 잃는 시련 겪으며 허세와 허식 사라져 #중산층 삶 회복, 인종갈등 갭 메우려는 의지 강렬

금년 초 미국 민주당 경선이 시작될 때에도 온 세계는 바이든을 과소평가했다. “나이 많은 구세대 정치인인데 선거 자금도 별로 없다더라.” “오바마의 부통령이었다는 거 말고 특출한 업적이 없지 않나?”

필자는 대통령의 성패는 그의 내면과 성품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바이든의 내면과 성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는 사람은 좋아 보이지만 콘텐트는 부족하고 말과 행동이 엉성한 ‘엉클 조’(Uncle Joe)가 아니다. 바이든은 실은 끈기와 집념의 DNA를 가진 ‘삶의 아일랜드스러움’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바이든은 아일랜드 이민자 집안 출신이고, 아일랜드인의 끈기는 전 세계의 상식이다.)

또한 바이든 시대는 오바마 2.0이 아니다. 그의 외교는 화려한 언변으로 정치적 계산을 포장하며 몸을 사리던 오바마 시대의 외교와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의 겸손과 허술한 말솜씨 뒤에 감춰진 집요한 목표의식과 정치력이 발휘된다면, 바이든의 시대는 트럼프 포퓰리즘을 누른 시대를 넘어 전환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①‘엉클 조’라는 오해 ②오바마 2.0이 되리라는 우려 ③끈질긴 의지와 실사구시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바이든의 내면과 성품을 살펴보자.

먼저 구세대 정치인, 엉클 조의 오해부터 벗겨보자. 2015년 여름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막바지로 접어들고 현직 부통령 바이든의 2016년 대선 출마여부가 관심사일 때, 바이든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불출마 기자회견을 갖는다. 불출마의 이유는 정치적 계산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을 솔직히 대면한 결과였다.

바이든은 2015년 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큰아들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과의 작별은 모든 부모에게 지옥일 터이지만, 바이든과 아들 보(Beau) 바이든은 수십 년간 함께 지옥을 통과해 온 삶의 동반자였다. 바이든은 1972년 29살 상원의원 당선인 시절에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두 아들과 홀로 남겨졌었다. 그 좌절을 뚫고 함께 성장해온 큰아들의 때 이른 죽음은 이미 지옥을 겪었던 바이든에게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좌절이었다. 그 무렵의 회고. “내가 잠에서 깨면 그는 달아났다. 그리고 낮이 다시 나의 밤을 데려다 놓았다.”(바이든 자서전『약속해 주세요, 아버지』)

2020년 초 바이든은 아일랜드인의 후예답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선거전에 뛰어든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미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고 ‘소방관·경찰·간호사·작업라인 노동자들의 삶을 되살린다’는 목표를 되새기면서. 바이든 삶의 놀라운 회복 탄력성은 삶의 벼랑에 몰려 있는 중서부 지역 백인 노동자, 디지털 전환 속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 남부지역 대도시 소수 인종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고난과 싸워온 인생 스토리를 통해서 바이든은 보통 사람들에게 뭔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7500만 표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두 번째, 오바마 2.0이 될 것이란 우려. 오바마 시대에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는 꽤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집행되는 외교정책은 절제된 개입, 절제하는 외교에 머물렀다. 앞으로 바이든 외교가 오바마 외교와는 꽤 다르게 흘러갈 거라는 단서를 주는 장면 하나. 2009년 오바마 취임 초,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백악관 고위 전략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조, 이라크는 당신이 해결해요.(Joe, you do Iraq.)”라고 선언한다(『바이든: 그의 삶, 출마,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들』).

얼핏 보기에는 실세 부통령이고 외교 이슈에 오랜 경험을 쌓은 바이든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훈훈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으로 큰 득점이 되기 어려운, 난마처럼 뒤얽힌 이라크 문제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영리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장관·CIA국장을 지낸 레온 파네타는 오바마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내가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까지 깊이 개입해야 하나?”라는 전직 교수다운 판단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바이든은 진작부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제거되어야 하지만, 후세인을 축출하고 나면 이라크는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의 분열 속에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 봤었다. 막상 책임을 맡고 나자 부통령 바이든은 이라크 문제의 실질적 해법을 찾는 데에 팔을 걷고 나섰다. 백악관 기록에 따르면, 바이든은 그 이후 한 해 동안 알 말리키 수상을 비롯한 이라크 지도자들과 64회의 전화 통화를 하였다. 손자들 이야기,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라크 현지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실질적 정책 논의가 이어졌다.

화려한 언변과 고상한 개념, 불충분한 행동이 오바마 외교의 특징이었다. 바이든 외교는 세계 곳곳에 대한 깊은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 접근과 행동이 주축이다. 임기 1년 차에 ‘민주주의 정상회담 (Global Summit for Democracy)’을 개최하겠다는 약속, 미국의 중산층을 살리는 외교, 동맹국들과 함께 미국의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공약은 바이든의 말보다는 행동, 추상적 이념보다는 구체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외교로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 과소평가는 바이든 당선인은 과연 미국의 다중 위기를 넘어설 정치력과 리더십을 갖췄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거대한 무게를 가늠해보면, 바이든이 왜소해 보이기도 한다. 극심한 문화적·이념적·인종적 분열, 기후 변화, 플랫폼 경제의 확산과 노동의 위기, 코로나 팬데믹과 급속한 디지털 전환, 이런 문제들을 들여다보노라면 누구라도 위축될 수 있다.

다시 그의 내면을 돌아보자. 두 차례나 가족을 잃으면서, 엉클 조의 허세와 허식은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잦은 말실수와 부적절한 행동이 그의 발목을 잡곤 했지만, 이제 그 자리를 분명한 목표 의식과 겸허함이 채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과 노동하는 미국인의 삶을 회복하고 높은 등록금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의 부담을 덜고 인종 갈등의 갭을 메우겠다는 바이든의 강렬한 의지와 경청하는 자세는 보통의 미국 사람들을 서서히 움직일 것이다.

노동계급 출신으로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던 사람, 수십 년 공직 생활을 했고 부인과 맞벌이를 해왔지만, 정작 큰아들의 암 치료비를 댈 만한 재산이 없어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으려 했던 그의 스토리는 당파간 갈등을 넘어 다양한 이들을 설득하는 정치 자산이 될 수 있다.

내년 봄이면 의회 내 공화당·민주당의 당파 싸움과 민주당 계파 갈등은 그의 정치력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원에서 수십 년간 닦은 협상력, 전 세계에 걸친 네트워크보다 큰 정치적 자산은 그의 끈기 있는 삶, 거듭되는 역경을 헤쳐온 의지일 것이다. 이제 그의 시선은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고 보통사람들의 삶에 안전망을 깔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업적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바이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성급한 일일 수도 있다.

누가 트럼프에서 바이든 지지로 옮겨갔나?

지지층 이동

지지층 이동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트럼프 지지에서 바이든 지지로 바꾼 핵심 집단은 백인 고졸 남성 유권자들과 중하층 유권자들이다. 백인 고졸 남성들은 여전히 트럼프 지지가 더 많기는 하지만 이들의 민주당 바이든 지지는 적어도 1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연간 수입 5만~10만 달러의 중·하층 집단의 과반수는 트럼프 지지에서 바이든 지지로 옮겨갔다.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