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부동산 온라인 게시판까지 감시하겠다는 정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것이 정부·여당의 24번째 부동산 대책인가.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과 진선미 미래주거추진단장 등 여당 의원 19명이 ‘부동산 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률안’을 내놓았다.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거친 사실상의 정부·여당 안이다. 명목은 부동산 시장 안정이다. 그러나 택한 수단이 지나치다. 부동산 거래를 낱낱이 감시하는 ‘빅 브러더’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부동산 경찰 조직’이라 할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신설해 구매 자금 마련 과정과 납세 자료 등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 게시판에 “얼마 이하로는 매물로 내놓지 말자”는 글을 올리는 것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담합 행위로 간주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전 세계 유례 없는 부동산 경찰조직 추진 #주택 소유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나

이것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나라의 정책인가. 시장을 틀어쥐겠다는 부동산 감독기구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부동산 정책은 보유세·거래세율과 대출 한도 등을 적절히 조절해 시장에 간여하는 게 보통이다. 세계적으로 부동산거래분석원과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주택을 비롯해 생필품 가격 전반을 관리하는 베네수엘라의 ‘공정가격감독원’ 정도다. 부동산 감독기구 설립을 놓고 ‘대네수엘라(대한민국+베네수엘라)’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온라인 게시판을 감시해 가며 집값에 대한 집주인의 의견 표시를 통제하겠다는 발상 또한 수긍하기 어렵다. 물론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 현수막을 내걸고 가격 올리기 운동을 벌이는 것 등은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온라인에 글을 올리는 일까지 시장을 교란하는 담합행위로 간주해 처벌하겠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 표현의 자유 억압에 가깝다. 아파트 부녀회·입주자회의와 주택 소유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감시하겠다는 처사로 비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무려 23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도심 재개발·재건축 등 공급을 늘리려는 노력은 외면하고 세금 폭탄과 대출 규제로 수요만 옥죄려 한 탓이다. 결과가 무언가. 집값은 치솟았고 전세난은 극심해졌다. 그래도 정부와 여당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 시장의 실패”라고 강변한다. 국민 3분의 2가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한국갤럽)고 하건만 정부·여당은 이런 인식을 손톱만큼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고선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든 법안을 발의했다. 주택 소유자의 재산권 행사와 관련한 의견 표출마저 감시·억압하겠다고 한다. 다주택자를 모두 투기꾼으로 몰고서도 모자라 이젠 주택 소유자와 무주택자를 갈라치려는 것인가. 편 가르기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부동산 대책은 정책 실패에 대한 뼈아픈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