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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트럼프 분노의 레임덕…조마조마 72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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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바이든 시대 - 트럼프 향후 행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9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국정 인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나홀로 불복쇼’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그래도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2021년 1월 20일까지 72일 동안은 여전히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시한부라 해도 대통령은 대통령. 특히 미국의 대통령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의 ‘72일 천하’를 전 세계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이유다.

본인·가족 혐의 셀프사면 우려 #연방판사 ‘알박기’ 임명 가능성 #권력 상실 복수심·공포심으로 #충성파 지지자 부추겨 소요 선동 #민감한 비밀 정보 해제 가능성 #미국 망치는 데 남은 임기 사용 우려

우선 트럼프가 퇴임 전 본인과 가족기업에 대한 탈세 수사, 성폭행 등 각종 형사소송과 관련해 이른바 ‘백지 사면(blanket pardon)’을 할 가능성이 있다.

비슷한 전례가 있긴 하다.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도 1974년 ‘닉슨이 재임 중 저질렀거나,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연방 범죄 일체’를 사면했다. 검찰이 기소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혐의를 없애 줬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차기 대통령 당선인을 백악관에서 만나 국정 현안을 인계했다. ① 2016년 11월 1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왼쪽). ② 2008년 11월 1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왼쪽)와 오바마 당선인 부부. ③ 2000년 12월 19일 부시 당선인(왼쪽)과 빌클린턴 대통령. ④ 1992년 11월 18일 클린턴 당선인(왼쪽)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중앙포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차기 대통령 당선인을 백악관에서 만나 국정 현안을 인계했다. ① 2016년 11월 1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왼쪽). ② 2008년 11월 1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왼쪽)와 오바마 당선인 부부. ③ 2000년 12월 19일 부시 당선인(왼쪽)과 빌클린턴 대통령. ④ 1992년 11월 18일 클린턴 당선인(왼쪽)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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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대통령(65건)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300건)도 물러나기 전 측근 등에 대해 대규모 사면을 몰아서 했다. 다만 트럼프가 본인이 받는 혐의를 사면한다면 ‘셀프 사면’이란 새로운 기록을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도 여전히 그에게 있다. 트럼프가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해 쓴소리를 해 온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을 해고하는 ‘몽니’를 부리거나, 다수당인 상원을 활용해 연방판사를 대거 임명하는 등 ‘알박기 인사’도 할 수 있다.

“레임덕에 빠진 트럼프, 도자기 가게 망치 든 악동 될 수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에도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위치한 자신 소유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에도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위치한 자신 소유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2대 존 애덤스 대통령(연방당)이 1801년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민주공화당) 취임 전 수십 명의 법관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기술적으로는 대통령직 수행과 관련한 중요한 문건을 파기하고, 비밀문서를 공개해 바이든 당선인의 정권 인수를 방해하는 ‘사보타주’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 수 있는 문건도 파기하라고 할 수 있다.

윌리엄 애들러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는 NBC 기고를 통해 28년 전 빌 클린턴(민주당) 정부에서 조지 W 부시(공화당) 정부로 교체될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부시 측 직원들이 새로 입주했는데, 백악관 컴퓨터 키보드에 ‘W’ 자판만 사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중간 이름 이니셜 ‘W’를 일부러 빼간 것인데, 트럼프의 방해 공작은 이런 장난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다.

바이드노믹스 설계자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바이드노믹스 설계자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린지 체르빈스키 국제 제퍼슨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CNN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는 2017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비밀 정보를 공유한 것처럼 마지막 두 달 동안 정치적 목적으로 고도로 민감한 정보의 비밀 등급을 해제하거나 정보 출처도 공개할 수 있다”며 “이는 미국은 물론 동맹국의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72일 동안 미국의 군 통수권자도 여전히 트럼프다. 올 1월 의회 승인도 받지 않은 채 무인기 정밀폭격을 통해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한 것처럼 미국을 전쟁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독단적 결정을 또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기후변화·에너지·환경 공약.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기후변화·에너지·환경 공약.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가장 우려되는 상황 중 하나는 트럼프가 자신의 선거 불복을 위해 충성파 지지자들을 부추겨 전국적 소요 사태를 선동하는 등 미국을 국가적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애들러 교수는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를 “앙심과 두려움을 품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에 빠진 현직자”라고 표현했다. 작가이자 안보전문가인 맬컴 낸스도 이미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 가디언에 “트럼프는 권력을 잃은 뒤 복수심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마치 도자기 가게에 대형 망치를 들고 온 악동처럼 미국을 망치는 데 남은 임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엄청난 권한은 유지한 채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주의회-주지사 당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미국 주의회-주지사 당적.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당장 공화당 핵심 그룹에서는 트럼프와 거리두기를 하는 듯한 조짐이 포착된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공화당 최고 지도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미 언론이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선언한 이후 트럼프의 불복 의사 표명이나 소송 제기에 대해 지지 의사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펜스 부통령은 지난 4일 새벽 2시(현지시간)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에 함께한 뒤 공개석상에선 모습을 감췄다. 참다못해 트럼프 캠프의 한 고위 관리는 8일 오후 “도대체 펜스는 어디에 있나(Where the hell is Mike Pence?)”라는 문자메시지를 돌렸다고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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