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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의대생 국시 거부가 쏘아 올린 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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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뭔가 이상하다. 정작 당사자는 조용한데 주변이 난리다. 의대생 의사국가고시(국시) 추가 응시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공정성 차원 재응시 불허 방침 속 #기형적 의료시스템 수술도 어려워 #딜레마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 필요

의대생은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하며 9월 8일 시작된 국시 거부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9월 24일 입장을 바꿔 응시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는 ‘재응시 불허’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국가시험과의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파업의 대오에 함께 섰던 선배 의사들의 ‘꼬리 내리기’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건 안타깝지만, 의대생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 일부 의대생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 정도로 공정성을 강조하는 국민의 반대 여론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의대생 구하기’는 분주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달 8일 주요 대학병원장은 “의대생에게 국시 응시 기회를 허락해 달라”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의대 교수들도 동분서주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정부가 본과 4학년생의 국시 재응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마저도 미묘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한 책임”이라며 “복지부에 바람직한 결론을 주문했다”고 했다.

차라리 쿨해 보이는 쪽은 의대생이다. 지난달 30일 의협 비상연석회의에 참석한 본과 4학년 대표는 “국시 거부는 잘못된 의료 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단체행동 결과가 본질인 만큼 대리 사과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객이 전도된 듯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올해 국시에는 대상자(3172명)의 14%인 446명만 응시했다. 의사 2700여 명이 배출되지 못해 인턴(수련의)과 레지던트(전공의) 25%가량이 줄어든다는 예상이 나온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이른바 ‘빅5’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만 1861명이다. 이 중 25%만 줄어도 병원 현장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젊은 의사의 공백이 의료 대란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젊은 의사 수혈이 끊기며, 낮은 의료수가에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비교적 싼 가격에 공급해 온 상황도 달라지게 됐다. ‘젊은 의사 등골 빼먹기’로 지탱해 온 의료 서비스 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 시대에 전공의는 주당 80시간을 일한다. 이른바 ‘전공의 법’ 제정으로 줄어든 게 이 정도다. 임금도 낮다. 2019년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평균 급여는 345만5000원이다. 최저임금(8590원)보다는 많지만 시간당 1만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의대생 국시 거부가 쏘아 올린 의료대란은 어불성설이다. 의료 시스템의 기형적 구조를 수술하면 풀 수 있다. 해결책은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의 말대로 정규의사 인력 고용이다. 진료와 수술을 하지 않고 병동에 상주하며 입원 환자만 돌보는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 전공의보다는 전문의가 훨씬 나은 선택지다. 물론 환자와 일반 국민은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진료 지연 등 불편함도 감내해야 한다.

공정성에 방점을 찍은 강경 모드로 정부와 국민 모두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젊은 의사의 희생에 기대 온 의료 시스템을 개혁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를 설득하고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대신 국시 추가 응시를 허용하면 공정성은 무너지고 젊은 의사에 대한 착취 구조를 용인하자는 걸로 비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딜레마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애꿎은 의대생에게만 돌리지 않는 것이다. 선택은 의대생만 한 것이 아니라서다. 비겁하고 치사한 어른 노릇은 충분히 했다. 지혜로운 어른 노릇이 필요한 시간이다.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