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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국가 차원의 세심한 교육 없으면 디지털 소외 심각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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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디지털 격차 극복과 디지털 포용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와 저소득층 등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포용사회 건설이 절실하다. 사진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실버 스마트폰 교육을 받는 어르신. [중앙포토]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와 저소득층 등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포용사회 건설이 절실하다. 사진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실버 스마트폰 교육을 받는 어르신. [중앙포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work from home)라는 말이 일상화되었다. 그런가 하면 ‘재택은 하는데 근무는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도 생겨났다. 이제까지 업무는 통상 사무실에 출근해서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이나 커피숍 같은 장소에서 업무를 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등장했다.

인터넷 활용 못 해 사회에서 소외되는 디지털 격차 심해져 #ICT 활용해 혜택 누리게 하는 디지털 포용 사회 구축 절실 #코로나 이후 발전은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달려 #정부와 민간이 역할 분담해 계층별·수준별 디지털 교육 나서야

그뿐이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 학생들의 등교가 막히니 온라인 수업이 불가피해졌다. 해외 출장이 어려워짐에 따라 해외 고객과 화상으로 소통하는 일도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이제는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으로 받아들이고 각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추세다. 이러한 방식의 업무 수행이나 온라인 수업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디지털 인프라와 기술 덕분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디지털 인프라와 기술의 혜택을 다 누린다고는 할 수 없다.

디지털 소외 계층은 생존 위협받아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와 저소득층 등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포용사회 건설이 절실하다. 지난 3월 ‘마스크 5부제’에 맞춰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을 찾은 고령자. [연합뉴스]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와 저소득층 등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포용사회 건설이 절실하다. 지난 3월 ‘마스크 5부제’에 맞춰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을 찾은 고령자. [연합뉴스]

지금은 마스크를 구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지만,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매우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젊은 세대는 마스크 판매 사이트 정보를 SNS를 통해 공유하며 쉽게 마스크를 구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구매하거나 아예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은행 거래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은행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은행 일을 보는 경우가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다 보니 디지털 소외 계층은 온라인이나 모바일 거래에서 제공되는 수수료 면제나 우대 금리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수업 또한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수 중에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교수와 그렇지 못한 교수 간에 격차가 생기게 된다. 그런가 하면 대면 수업을 할 때는 쉽게 알아보기 힘든 교수들 간의 실력 차이가 온라인 수업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놓고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정보화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가급적 많은 사람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디지털 포용’(digital inclusion) 사회를 구축하는 일이 절실한 시점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한 기술이 일부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장벽이 되는 게 현실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와 저소득층 등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포용사회 건설이 절실하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은행 지점을 찾은 어르신. [연합뉴스]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와 저소득층 등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디지털 포용사회 건설이 절실하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은행 지점을 찾은 어르신. [연합뉴스]

마스크 구매 사례에서 보듯이 디지털 격차가 경제적·사회적 격차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디지털 격차 현상을 방치하게 되면 사회적 약자 계층의 박탈감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디지털 소외’ 계층이 늘지 않도록 ‘디지털 포용’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리터러시(literacy·문해·文解)라고 하듯,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라고 말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지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 의식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도 제고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 청소년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계층별로 수준을 고려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 대다수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익혀 소득 증가는 물론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디지털 활용 못하는 사람 위한 기술

교육 주체도 주요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 등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민간 교육기관이 역할을 분담하는 형태가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디지털 기기를 제조하는 기업의 역할과 관심도 중요하다. 국내의 한 통신사는 휴대전화에 인공지능 스피커를 연결하여 사용자가 궁금한 사항을 스피커에 물으면 곧바로 답을 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 결과 인터넷 검색을 잘하지 못하는 사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만을 위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객을 위해서도 기술이 발전한 사례다. 기기 자체를 사용자의 연령이나 신체 조건 등을 고려해서 만드는 발상도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선진화된 ICT를 활용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제대로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매켄지 등은 보고서에서 ICT 관련 정책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롭게 재편될 질서를 가늠하는 요체라고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각국의 발전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어떻게 추진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심화된 ‘디지털 격차’를 극복하고 ‘디지털 포용’ 사회로 나아가도록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저소득층·청년·고령자 디지털 교육에 민간 참여 절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3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원격 근무(teleworking)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현장 근무나 대면 근무가 필요한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으며, 원격 근무가 힘든 근로자는 수입이 줄거나 해고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규모는 35개국 전체 근로자의 15%인 1억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에 IMF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해소를 당면한 현안 과제로 적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의 근로자가 가장 위태로울까? 보수가 낮은 저소득층이나 청년층이 이에 해당한다. 개발도상국일수록 집에 컴퓨터가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 경우는 이에 더해서 노인층의 디지털 격차 문제까지 있다. 빈부 격차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격차마저 커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일에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부문도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2019년부터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국제 비영리 청소년 교육기관 JA(Junior Achievement) Korea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2002년 JA Worldwide와 제휴를 맺고 진로·경제금융·기업가 정신 등 3개 부문에 걸쳐 청소년을 가르친다. JA는 1919년 미국에서 호러스 모저스 등 세 명의 기업인이 청소년의 성취를 돕고자 설립한 단체다. 100년이 지난 2019년 세계적으로 47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1200만 명의 청소년을 교육할 만큼 성장했다.

JA Korea는 ICT 강국의 강점을 살려 디지털 교육을 또 하나의 활동 부문으로 추가했다. 2016년부터 장애인과 청소년들에게 코딩 교육을 하여 디지털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올해는 취약계층 아동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 청소년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가 노년층의 디지털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으면 한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정부와 민간 부문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대한민국이 ‘디지털 격차 극복과 디지털 포용’에 선도적 역할을 하기를 소망한다.

오종남 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전 IMF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