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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 입 좀 다물어"…트럼프에 민심 등돌린 결정적 세 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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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임을 꿈꾸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대미문의 바이러스와 '흑인 민심'이라는 허들을 결국 넘지 못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가 미국이라는 사실은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입원 중인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 월터 리드 군 병원 밖으로 차를 타고 나와 지지자들 앞을 지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입원 중인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 월터 리드 군 병원 밖으로 차를 타고 나와 지지자들 앞을 지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월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불붙은 흑인들의 분노는 이들의 발걸음을 투표소로 이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의 TV 토론에서 보여준 변함없는 '불통'의 태도 역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민심을 강화시켰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을 패배로 이끈 세 가지 결정적 장면을 꼽아봤다.

장면1. "파우치 해임? 조금만 기다려" 

대선을 하루 앞둔 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파우치를 해고하라"는 지지자들의 외침에 이렇게 답했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 조언해줘 감사하다."

자신이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에 연일 경계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과 대립각을 세웠던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바로 해고하겠다는 뜻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파우치(오른쪽)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파우치(오른쪽)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AP=연합뉴스]

같은 날, 조 바이든 당선인은 파우치를 적극적으로 감쌌다. "내가 선출되면 파우치를 기용할 것이고, 트럼프를 해고할 것"이라고 맞선 것이다. 민심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경시하며 "경제 재건"만을 외쳤던 트럼프보다 "최악의 순간을 대비하라"고 조언했던 전문가의 식견을 선택했다.

선거 막바지인 10월 말부터 경합주로 꼽히는 북부 '러스트벨트'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재확산한 것도 트럼프의 발목을 잡았다. 펜실베이니아주(선거인단 20명)에서는 지난달 30일 2499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일일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미시간(선거인단 16명)과 위스콘신(선거인단 10명)에서도 각각 3000명, 5000명을 넘어서며 하루 기준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왔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이런 상황이 "'팬데믹은 거의 끝났고, 더 이상의 봉쇄는 필요하지 않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무력화시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돼 막판 '트럼프 심판론'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장면2,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아프리카계 46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체포를 당한다.

인근 가게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플로이드를 바닥에 눕히고 목을 무릎으로 눌러 제압했다. 백인 경찰에게 깔린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어요. 날 죽이지 마세요"라고 호소하다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지난 5월 27일 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들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에 나선 시위대를 최루액 분사기로 진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27일 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들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에 나선 시위대를 최루액 분사기로 진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 내 흑인 인권문제에 다시 불을 지폈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팻말을 든 시민들이 미국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과격해져 약탈과 방화, 총기 사고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8월 일어난 제이콥 블레이크 사건을 비롯해 비슷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흑인들의 민심은 극도로 악화했다.

2016년 백인 후보끼리의 경쟁에 흥미를 잃고 투표를 포기했던 흑인들은 이번엔 적극적으로 '반(反) 트럼프 전선'에 합류했다. WP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흑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선이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때보다 중요한 선거"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 미국 내 약 3000만명에 이르는 흑인 유권자들의 분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는 거대한 장벽이 됐다.

장면3. "제발 입 좀 다물어"

지난 9월 29일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1차 TV 토론은 혼돈 그 자체였다. CNN에 따르면 "이제까지 본 대선후보 토론회 중 가장 엉망진창(chaotic)인 토론회"였다.

상대 후보인 바이든의 말을 수시로 자르고 노골적으로 끼어들며 방해한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쳐야 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Will you shut up, man)!"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지난 9월 29일 1차 TV토론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지난 9월 29일 1차 TV토론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뻔뻔함과 공격성에 익숙한 미국인들도 이번 TV토론에서 그가 보여준 '불통'의 태도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토론회가 끝난 직후 CNN이 시청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0%가 바이든 후보가 승리했다고 답했고, 트럼프 대통령을 승자로 꼽은 사람은 28%에 그쳤다.

이런 부정 평가에 영향을 받은 듯 트럼프는 2차 토론회엔 비교적 차분하게 임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21일 바이든 후보 지원에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난장판이 된 TV토론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을 선택하면 트럼프의 '미친 소리(crazy things)'를 매일 들을 필요가 없어 우리 모두 이렇게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이 표심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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